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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천왕봉 못지않은 촛대봉 일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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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지리산 종주…성삼재~중산리 33,5㎞

지리산 촛대봉에서 만난 일출 .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정상인 천왕봉이다. 김도훈 기자
지리산 촛대봉에서 만난 일출 .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정상인 천왕봉이다. 김도훈 기자

지리산은 국내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있다.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하동·함양·산청 등 3개 도, 5개 시군을 아우른다. 노고단, 삼도봉, 촛대봉, 연하봉, 천왕봉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산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진다.

특히, 주능선을 걸으며 1천500m가 넘는 봉우리를 숱하게 만나는 지리산 종주.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로망이다.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46.2㎞)와 성중종주(성삼재~중산리, 33.5㎞)가 대표적이다. 지난 7일 2박3일 일정으로 성중종주에 도전했다.

◆학창시절 추억 찾아 떠난 종주길

지리산 종주를 마음먹은 건 학창시절 추억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80ℓ 배낭을 짊어지고 수차례 지리산 종주를 했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와서도 지리산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모두 겨울이었다. 그런 만큼 배낭도 무거웠다. 지금이야 동계용 침낭 무게가 1㎏이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그 시절 동계용 솜 침낭은 3㎏에 육박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먹을 거라곤 3박4일 정도 먹을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과 쌀 정도만 챙겼는데도 카메라 장비와 삼각대를 더하면 배낭 무게는 20㎏에 달했다.

그 시절 추억은 평생 가슴에 남았다. '나 홀로 종주'에 나섰던 1997년 겨울, 첫날엔 분명 혼자였는데 4일째 날엔 함께 어울려 산행을 하고 식사를 하는 일행이 6명으로 불어나있던 기억. 생일 날 세석 대피소에서 만난 첫눈. 20대 초반엔 지금은 없어진 뱀사골대피소 100m 앞에서 커다란 개가 나타나 사납게 짖어대는 바람에 3시간 넘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런 따뜻한 추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계획한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는 약 33.5㎞. 몇몇 사람들은 식수와 행동식 정도만 챙기고 15시간 내외를 걸어 무박종주로 끝내버리기도 하는 코스다. 하지만 이 길을 3일에 걸쳐 천천히 걸어 가보기로 했다.

출발 3주전쯤 산행 일정을 짠 뒤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첫째 날과 둘째 날 각각 묵을 노고단대피소와 세석대피소를 예약했다. 옛 추억이 서린 대피소를 고집하는 바람에 이틀째 운행 거리가 20.5㎞로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이런 이유로 출발 전날 최대한 배낭을 가볍게 쌌다. 침낭과 매트리스도 뺐다. 카메라도 렌즈교환식이 아닌, 400g 정도의 '똑딱이'(콤팩트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그렇게 꾸린 배낭 무게는 9.6㎏. 성공적이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내려다 본 하동쪽 모습. 김도훈 기자
지리산 노고단에서 내려다 본 하동쪽 모습. 김도훈 기자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수백 번 곱씹다

오후 3시쯤 성삼재휴게소에 도착했다. '29년만의 지리산 종주'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노고단대피소까지는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길이다.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닿는다. '할미단'이라고도 불리는 노고단은 반야봉, 천왕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로 꼽힌다. 전설 속 '마고할미'를 위한 일종의 제사 터다. 안내판에 따르면 애초 천왕봉에서 제사를 지내다 고려시대부터 노고단으로 옮겨 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고단은 명성만큼이나 해돋이가 빼어나다.

날씨 어플을 살폈다. 다음날 일출 무렵 노고단 쪽에 구름이 가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날 새벽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대피소 입실 절차를 마친 뒤,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노고단으로 향한다. 푸른빛으로 물든 섬진강 물줄기와 경남 하동, 구례 쪽 들녘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튿날 오전 5시, 배낭을 꾸려 산행에 나선다. 노고단 아래 노고단고개부터 본격적인 종주 능선이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은 여느 산처럼 능선이 평탄하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수많은 봉우리를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해야 한다.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돼지령과 임걸령을 차례로 지나 노루목에 이른다. 이곳에서 반야봉(1732m) 오르는 길이 갈리는데, 반야봉 오르는 건 포기했다. 반야봉에 들르면 1시간 이상을 더 잡아야 하기에 다음을 기약한다. 대신 전북·전남·경남이 경계를 이룬 삼도봉에 이르러 반야봉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화개재까지 곤두박질했다가 다시 토끼봉을 오르는 가파른 길은 첫 번째 고비다. 이 고비를 넘기면 연하천대피소가 나타난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연하천대피소는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숙소다.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2시간 거리다. 커다란 바위가 많은 형제봉을 넘으면 벽소령대피소가 나온다. 이날 산행을 시작하면서 오후 1시까지만 벽소령대피소를 통과하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예상보다 30분 빨리 도착했다. 전날 산 빵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뒤 세석대피소로 향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3시간 30분 거리로 둘째날 일정의 가장 강력한 고비다. 배낭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덕평봉과 연신봉을 넘으며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수백 번을 곱씹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벽소령대피소가 없던 시절, 오후 4시가 훨씬 지난 시각에 벽소령을 통과한 뒤, 겨울철이라 일찍 해가 진 탓에 길을 잃었다. 결국 귀신이 따라오는 것만 같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대피소에 도착한 기억. 이날 반야봉을 오르지 않은 것도, 오후 1시까지 벽소령대피소를 통과하자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런 기분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보니 어느덧 세석대피소에 닿았다. 오후 5시였다.

벽소령대피소와 세석대피소 사이에 있는 선비샘 인근 전망대. 이 구간부터 조망이 트이기 사작하는데 섬진강과 하동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원래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지만 풍경이 마음에 들어 잠시 쉬며 셀프촬영을 했다. 김도훈 기자
벽소령대피소와 세석대피소 사이에 있는 선비샘 인근 전망대. 이 구간부터 조망이 트이기 사작하는데 섬진강과 하동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원래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지만 풍경이 마음에 들어 잠시 쉬며 셀프촬영을 했다. 김도훈 기자

◆오늘 만난 지리산은 어제와 달랐다

다음 날 오전 4시 40분. 서둘러 대피소를 출발했다. 촛대봉(1703m)에서 일출을 맞기 위해서다. 일출에 대해 특별한 로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늘 해뜨기 전 지나쳤던 이곳에서 붉게 물든 지리산 너른 품을 느껴보고 싶었다.

오전 5시 20분, 붉은 오로라 같은 빛이 천왕봉 일대를 물들였다. 여기저기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몇 차례 만났지만, 촛대봉 일출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을 했다.

일출을 감상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천왕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돌이 많아 제법 험한 능선길을 따라 2시간 정도를 걷다보니 지리산에서 가장 붐비는 장터목대피소에 닿았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만난 풍경. 사진 오른편 가장 멀리 덕유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보인다. 김도훈 기자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만난 풍경. 사진 오른편 가장 멀리 덕유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보인다. 김도훈 기자

이곳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길을 나선다. 제석봉 일대는 고사목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장관이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첫날 올랐던 노고단 일대가 아스라이 보인다. 저곳부터 걸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통천문'으로 불리는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천왕봉이다. 수차례 천왕봉을 올랐지만 이렇게 맑은 날씨는 처음이다. 얼마나 청명한지 광양 쪽으로는 구비치는 능선 너머 남쪽 바다까지 조망된다. 북쪽으로는 덕유산 주능선이 선명하다. 천왕봉엔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기자는 늘 그랬듯 인증사진을 찍지 않았다. 대신 바위에 앉아 발아래 놓인 세상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전경.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김도훈 기자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전경.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김도훈 기자

지리산은 예부터 두류산, 방장산 등으로도 불렸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이름이 지리산, 고려 말 신진 사대부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선호한 이름이 두류산이다. 조선시대 김종직(1431~1492)이 지리산을 둘러본 뒤 쓴 '유두류록'의 글로 천왕봉에 오른 소회를 대신 전한다.

"새벽녘에 해가 동녘에서 솟아오르려 하자 노을이 영롱하게 빛났다. 성모묘에 술을 부어 놓고 사례하기를 '오늘 천지가 맑게 개고 산천이 확 트인 것은 진실로 신명의 은택입니다'라고 하였다. 기러기나 고니라 할지라도 우리보다 높이 날 수는 없으리라. 때마침 날씨가 막 개어 사방에 구름 한 점 없었다. 하늘이 푸르고 아득하여 끝을 알 수 없었다."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전경.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김도훈 기자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전경.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김도훈 기자

◆산행정보

종주산행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기 때문에 타고 간 차량 회수가 골칫거리다. 특히 지리산의 경우 거리가 멀어 더욱 그렇다. 자차를 성삼재에 두고 종주할 경우 중산리에서 택시로 돌아올 수 있다. 시간은 약 1시간 50분, 요금은 14만원 정도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남원공용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3차례 운행한다. 요금은 일반 1만1천원, 우등 1만4천300원이다. 1시간 40분정도 걸린다. 남원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택시를 이용해 성삼재휴게소까지 가면 된다. 요금은 5만5천원이다.

중산리로 하산한 후에는 중산리버스정류소에서 1시간30분 내외 간격으로 운행하는 진주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요금은 7천400원이다. 진주에서는 대구를 오가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종주에 앞서 노고단 탐방로와 각 대피소는 반드시 미리 예약해야 한다. 평일은 대피소 예약이 쉬운 편이지만 주말엔 거의 꽉꽉 차는 편이다. 노고단 탐방로도 비슷하다. 하루 탐방 인원을 제한해 예약이 필수다.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www.knps.or.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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