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食客)은 누굴까? 식도락가와 미식가, 그리고 여행작가의 유전자를 가진 '낭만나그네'라 할 수 있다. 산해별미를 맛보며 산천 경계를 넘나든다. 그 지역의 예인들과 야심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름대로 가늠하는 자가 아닐까 싶다. 봉이 김선달과 방랑시인 김삿갓도 그런 축에 넣어줄 수 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한국 식객의 원류는 누구일까. 다들 허균(1569~1618)을 꼽는다. 그리고 고려의 이색,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수운잡방'이란 고조리서를 집필한 김유, 실학파의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정약용·정약전 형제, 추사 김정희 등도 식객의 범주에 넣는 식품사학가들도 있다.
◆ 한국의 첫 미식가이드북…도문대작
허균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이기도 하고 강릉 경포대 옆 초당순두부 탄생의 주역이 되기도 한 초당 허엽의 아들이다. 또 누이는 여류시인 난설헌이었다.
그는 1611년에 우리나라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 '도문대작'(屠門大嚼)을 펴낸다. 도문대작은 '고기를 먹을 형편이 못 되어 푸줏간의 문이나 바라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달랜다'는 뜻으로 유배된 처지로 음식을 부러워하는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국내 첫 팔도 맛 평가서로 불리는 이 책은 그가 전북 익산시 함열읍으로 귀양 갔을 때 쓴 책으로 귀양지에서 거친 음식을 먹게 되자 전에 먹었던 좋은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허균은 서문에서 '조선시대 남성 학자들이 식생활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며 경계의 글을 남겼다. 당시의 먹거리를 병이지류(餠餌之類·떡류), 과실지류(果實之類·과일류), 비주지류(飛走之類·날짐승류), 해수족지류(海水族之類·어패류), 소채지류(蔬菜之類·푸성귀) 등으로 나눠 모두 134가지 음식을 소개했다.
◆요리했던 선비
한국 첫 한글 고조리서로 기록된,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가 1670년 지은 '음식디미방'보다 130년 앞서 안동의 한 선비가 통과의례식에 대한 레시피를 총정리한다. 바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안동 군자마을(안동시 용상동) 출신인 탁청공 김유가 지은 요리책이다. 2012년 5월14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35호로 지정됐다.
'수운(需雲)'은 격조를 지닌 음식문화를 뜻하며, '잡방(雜方)'은 여러 가지 방법을 뜻한다. 즉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의미한다. 상·하권 두 권에 술 빚기 등 안동 지방 121가지 음식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사실 선비는 맛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꺼렸다. 음식 자체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그들은 배부른 걸 부덕하고 민망스럽게 여겼다. 허기를 조금 면하면 수저를 놓고 밥상을 수하에게 물린다. 더 배고플 것 같은 수하에게 밥상을 너무 양보하는 바람에 더없이 수척할 수밖에 없다. 그 형상을 유림에서는 '양상수척'(讓床瘦瘠)이라 해서 선비의 미덕으로 존수했다. 안동 반가에선 양상수척을 '체면치레'로 봤다. 나라에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이 들면 왕 역시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아예 밥상을 물리는 '감선'(減膳), 또는 고기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철선'(撤膳), 신하들과 당파싸움을 다스리기 위해 이른바 단식투쟁인 '각선'(却膳)도 불사했다.
이런 마당에 선비가 전국의 진미를 찾아 천하를 돌아다닐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기록을 보면 선비들도 끼리끼리 모인 자리에선 '식탐'도 있었다. 특히 좋은 차를 마시고, 좋은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심지어 불교가 절정이었던 고려 시대 때도 한국 불고기의 원형으로 지목받는 '설야멱'(雪夜覓)을 즐겼다. 연암 박지원의 '연암일기'에도 '눈 오는 날 친구와 뜨거운 화로 위에 번철을 놓고 조미한 쇠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를 즐겼다는 대목이 나온다. 새해 첫날 임금 앞에서 '단향회'(檀香會)를 벌이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단향회란 '박달나무 숯불에 구운 대나무꼬치를 먹는 모임'이다. 설야멱의 선배는 고조선발 '맥적'(貊炙), 이것이 근대화 과정에 '너비아니'란 이름을 갖게 된다.
◆식객이란 누구인가
특정 식당의 특정 메뉴가 다른 고장의 음식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소상하게 비교·설명할 수 있는 평론가급 안목과 입맛을 가져야 한다. 음식에 비교와 비판이 가미되어야 식객의 글이다. 식객도 '전국파'와 '로컬파'로 분류된다.
일단 전통요리 연구가부터 알아보자. 광복 직후에는 한국 고조리서의 계보를 학문적으로 천착해 나간 이성우 교수, 그리고 조선궁중요리 부문 인간문화재가 된 고 황혜성이 한식문화의 한 축을 형성했다. 또한 안동소주 장인인 안동의 조옥화도 안동반가음식의 한 흐름을 잡고 있다. 조옥화 덕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9년 자신의 생일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을 수 있었다.
식객문화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준 TV프로그램이 있다. 2002년 5월에 등장한 KBS2 'VJ특공대', 현재는 SBS '생활의 달인'과 KBS '생생정보통', 그리고 최불암으로 인기를 얻은 장수 프로 '한국인의 밥상'이다.
그렇다면 광복 직후 국내 첫 음식칼럼니스트는 누구로 볼 것인가. 어떤 사람은 소설가 백파 홍성유를 꼽는다. 그는 '식도락 별미기행'의 선구자였다. 또 어떤 사람은 동아일보 전 편집장으로 국내에서 구어체 버전의 칼럼시대를 연 홍승면을 꼽는다.
홍승면은 1950~60년대 독일·홍콩특파원이었고 견문이 넓어 동서양의 음식계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49년 합동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가 기념비적인 음식관련 연재를 시작한다. 76년부터 83년까지 월간 '주부생활'을 통해 연재된 '100미(味) 100상(想)'이란 음식칼럼이었다. 그의 연재물은 이후 삼우반 출판사에 의해 2권(1권은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2권은 '꿈을 끼운 샌드위치')의 책으로 묶여나온다.
또한 독학으로 만화를 터득한 뒤 월간 산을 통해 '뫼뿌리'를 연재한 조주청. 그는 다양한 직군을 돌아다닌 만화가이면서 세계여행작가로도 유명하다. 85년부터 신동아에 '조주청과 함께하는 지구촌기행', 이어 문화일보에 '조주청의 맛기행'을 연재한다.
한국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한식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안동 출신의 산당 임지호(작고). 2013년 여행과 요리를 곁들인 방송 SBS '방랑식객- 식사하셨어요?', 토크 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적 있다. 그리고 24년간 조선일보 월간 산에 '산따라 맛따라'를 연재하고 그걸 토대로 '전국산촌미락회'를 결성시킨 우촌 박재곤도 한 역할을 했다.
식객 돌풍의 주인공, 만화가 허영만.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2002년 9월 2일부터 2008년 12월 17일까지 총 116개의 이야기가 1천438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했고 SBS에서 2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는 자전거·바다·캠핑맛길의 신지평을 열었고 현재도 '백반기행'으로 맹활약 중.
이 밖에 '한국음식의 뿌리를 찾아서'(백산출판사)란 책을 낸 김영복, 마산 출신으로 '식탁 위의 한국사'로 더욱 유명해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 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매일경제를 은퇴한 윤덕노는 2007년 출간한 '음식잡학사전'으로 유명해졌다.
여성지 기자 출신으로 후에 이탈리아로 가서 요리를 배우고 국내로 온 셰프 겸 요리연구가인 박찬일, 일간지 기자 중에는 조선일보 김성윤, 한겨레 박미향, 지금은 은퇴한 중앙일보 유지상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송수권, 소설가로는 김중혁, 한창훈, 성석제, 요즘은 예천에 자리를 잡은 안도현 시인도 푸드스토리텔링을 잘한다. 필자도 지역권 첫 음식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삼천포 출신의 박정배도 넓은 보폭을 가진 음식원류 연구가이다. 20대 중반부터 식객의 삶을 산다. 그 무렵 NHK의 '다큐서울 아시아는 지금' 제작에 간여하면서 일본 출장을 많이 다닌다. 이후 2013년 한길사에서 나온, 음식의 유래를 찾아가는 박정배의 '음식강산'으로 주목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만두 전문서를 펴내기도 했다.
◆1인5역의 근성파 식객
홍승면과 홍성유 이후 가장 승부근성이 강한 식객은 김순경이다. 동아일보에 사진기자로 입사, 1975년 동료 기자 112명과 함께 해직된다. 1984년 편집 이사를 맡았던 월간 자동차생활 창간호부터 칼럼을 쓴다. 이후 전국을 파고들어 찾아낸 숨은 맛집을 축으로 엮은 '한국의 음식명가 1300집'은 일본에서도 출간돼 화제였다. 전국을 종횡무진 누빈 명실상부한 음식칼럼니스트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아까운 인재가 세상을 떠났다. 김순경처럼 지난 40여년 족히 5천여 곳 이상의 식당을 전전한 황광해이다. 80년대 바캉스 부록으로 전국의 맛집 시리즈를 낼 때 그는 전국을 아홉 번 정도 일주했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스타급으로는 백종원이 단연 압도적이다. 경남 마산 출신의 두 명의 음식 전문가가 있다. '식탁 위의 한국사'로 더욱 유명해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그리고 2010년 '미각의제국'이란 저서로 유명해져 이후 맛칼럼니스트의 신지평을 열고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이 된 황교익이다. 황교익은 농민신문 재직 시절 전국 식재료 흐름을 추적했고 맛집보다는 맛의 원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후 백종원과 함께 TV채널을 쥐락펴락하는 유명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먹거리X파일'의 주인공 이영돈 PD도 국내 음식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지만 광고출연 문제로 낙마를 했다.
그리고 이색 '팔도식객'이 모여 형성한 '한국음식문화포럼'도 있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양용진(작고)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부산경남권을 커버하는 최원준 시인, 통영 및 남해안권은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 대구·경북은 필자, 전라도권은 '섬 인문학자'인 김준, 강원도권은 황영철 등이 커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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