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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살아 있는 예술, 죽일 수 있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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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아트의 선구자 오론 캐츠와 이오나트 주르

오론 캐츠 & 이오나트 주르 작.〈희생 없는 가죽(Victimless Leather)〉이미지 출처: https://tcaproject.net/portfolio/victimless-leather
오론 캐츠 & 이오나트 주르 작.〈희생 없는 가죽(Victimless Leather)〉이미지 출처: https://tcaproject.net/portfolio/victimless-leather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오론 캐츠(Oron Catts)와 이오나트 주르(Ionat Zurr)는 바이오아트(Bio Art)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해 왔다. 두 사람은 Tissue Culture & Art Project와 SymbioticA를 공동 설립하며, 예술과 생명공학, 윤리와 철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험적 작업을 지속해 왔다. 특히 2004년에 발표한 작품 <희생 없는 가죽(Victimless Leather)>은 바이오아트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실제 동물을 죽여 얻은 가죽이 아니라, 불멸화된 세포주(immortalized cell line)를 생분해성 폴리머 구조 위에 배양하여 만든 작은 재킷 형태의 살아 있는 조직이다. 작가들은 이 조직을 특수 제작된 관류 챔버(perfusion chamber), 즉 일종의 생물반응기(bioreactor) 안에서 성장시켰다. 작품은 얼핏 보면 '바느질 없는 가죽 재킷'처럼 보이지만, 실용적 의복이라기보다 생명공학 시대의 윤리적 상상력을 실험하는 생명예술 작품에 가깝다.

이 작업의 핵심은 제목에 담긴 "희생 없는(victimless)"이라는 표현에 있다. 전통적인 가죽은 동물의 희생과 죽음을 전제로 생산되지만, '희생 없는 가죽'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가죽과 유사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캐츠와 주르는 친환경적 대체 가죽을 제안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이들의 실험과 작품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면 정말 윤리적인가?", "실험실에서 배양된 살아 있는 조직을 인간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살아 있는 조직을 작품으로 전시하다가 결국 죽게 만드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실제로 이 작품은 전시 과정에서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서는 세포 조직이 과도하게 증식해 오염 위험이 발생하자, 큐레이터들이 영양 공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죽여야' 했다. 역설적으로 "희생 없는" 작품이 결국 인간의 판단에 의해 폐기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바이오아트가 단순한 과학기술을 응용한 예술 창작 행위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인간의 통제 욕망과 윤리적 책임을 드러내는 비판적 장치임을 보여주었다.

캐츠와 주르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세미-리빙(semi-living)'이다. 이는 완전한 개체 생명체는 아니지만, 살아 있는 세포의 성장과 영양 공급에 의존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들의 작품은 물건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조직이며, 제작된 결과물이면서도 지속적인 돌봄과 유지 관리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취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세미-리빙은 생명과 비생명, 자연과 인공, 객체와 유기체 사이의 전통적 구분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이들의 작업은 인간이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길들이고, 소비하며, 폐기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윤리적 실험이다. 이들의 바이오아트는 미래 기술에 대한 낙관적 찬양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균열을 내며 '살아 있음'의 의미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캐츠와 주르의 작업은 생명공학 시대에 인간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책임과 존재론적 불안을 드러내는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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