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제분업체 7곳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인 6천71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들은 2006년 한 차례 담합 제재를 받고도 다시 가격 담합에 나섰으며,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간에도 담합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20일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6년간 밀가루 공급가격과 공급 물량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과 과징금 6천710억4천5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지난 1월 7개 제분사와 관련 임직원 14명을 이미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 담합은 라면·국수·빵·과자 업체에 공급하는 기업간거래(B2B) 시장 전반에서 이뤄졌다. 7개사의 국내 B2B 밀가루 시장 점유율은 87.7%에 달하며, 상위 3개사인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의 점유율만 62%다.
담합은 대형 수요처 물량 경쟁에서 불씨가 붙었다. 2018년 대한제분이 농심 공급 물량을 대거 확보하자 경쟁사들이 할인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후 상위 업체 임원들이 인근 식당 등에서 만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적정 가격을 유지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담합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6년간 모두 24회 가격·물량을 합의했고, 55회에 걸쳐 대표자·실무자급 회합을 열어 합의 내용을 구체화했다. 공정위가 추산한 담합 관련 매출액은 약 5조6천900억원이다.
담합 효과도 컸다. 이들은 수입 원맥 시세 상승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빠르게 반영하고, 반대로 하락기에는 원가 하락분을 늦게 반영하는 식으로 수익성을 유지했다. 농심이 ㎏당 80원 인하를 요구하자 제분사들이 20원만 내리기로 합의한 사례도 적발됐다. 그 결과 2022년 9월 밀가루 가격은 담합 시작 당시인 2019년 12월에 비해 업체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하위 업체들은 상위 업체 결정에 편승했다.
삼화제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제분 3사가 먼저 가격을 올려주면 오히려 고마운 부분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담합은 이어졌다. 정부는 2022년 하반기 물가 안정을 위해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며 총 471억원을 제분사에 지급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보조금 수령 시점 이전에 가격 인상 합의를 실행하는 방안까지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 위반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 정황도 나왔다. 사조동아원 내부 회의에서는 "100% 공정위에 갈 수밖에 없다", "담합 부분을 어떻게 타파할 건지 전략을 잘 짜야 한다"는 발언이 오갔다. 업체들은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면 담합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업체별로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나눠 실행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사조동아원이 1천830억9천700만원으로 가장 많고, 대한제분 1천792억7천300만원, CJ제일제당 1천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천700만원, 대선제분 384억4천800만원, 한탑 242억9천100만원, 삼화제분 194억4천800만원 순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각 업체는 3개월 내 담합 이전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책정해 공정위에 보고해야 하며,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내역도 반기마다 제출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담합 관련 업체를 정부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밀가루 가격 모니터링을 매월 실시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밀가루는 라면·국수·빵·과자 등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재료"라며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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