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조광화식 연작들을 무대로 쏟아내며 한국연극의 전환기를 형성한 조광화 연출이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와 번안한 작품이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이다. 아시다시피 체홉의 <바냐 아저씨>는 19세기 말 몰락해가는 러시아의 지주계급과 지식인들의 허무와 상실을 그린 작품이다. 40대 중반까지 매형을 위해 헌신했지만 남은 것은 인생의 허탈함과 상실의 허무뿐인 바냐, 사랑받지 못하는 소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지쳐버린 의사 아스트로프, 사위의 지식을 신앙처럼 추종하는 마리야, 아름다움에도 삶이 공허한 엘레나, 사회적 개혁을 이룰 수 없는 박제된 지식인 세레브랴코프까지. 점차 몰락해가는 러시아 사회 속에서 이들이 살아가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거나 비극적인 상실과 허무를 품은 인간군상의 초상으로 읽혀왔고, 대체로 <바냐 아저씨>는 무겁게 해석됐다. 사라진 젊음, 비껴간 사랑, 보상받을 수 없는 헌신과 노력,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이상의 지식,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공허한 삶들의 이야기가 그럴 것이다.
또한, 체홉은 의사 아스트로프를 통해 숲과 자연의 파괴 문제를 다루었다. 무분별한 개발과 벌목으로 황폐해지는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기후위기와 산불, 홍수, 생태계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에 체홉이 던진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조광화는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인간의 상실과 허무의 원인을 찾아 깊게 성찰하고 있다. 개인의 실패나 좌절에 머물렀던 인물(바냐)을 한국 사회 역사와 시대의 문제로 확장한다. <반야 아재>는 1939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이식하면서, 이씨왕조가 무너지고 식민지 근대가 강압적으로 밀려오던 조선인들의 상실과 불안을 담아내면서도 불교적 성찰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중첩화한다. 체홉의 바냐가 인생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조광화의 반야는 시대를 잃어버린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조광화식 체홉의 <반야 아재> (국립극단·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무대 이태섭·조명 정태진·의상 김영진·분장 백지영) 이야기이다.
◇ '조광화식 불교적 사유와 성찰,' 충북 영동군의 한옥과 정미소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철안붓다>를 통해 불교적 세계관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삶과 죽음, 욕망과 깨달음의 문제를 다루었던 조광화 연출은 <반야 아재>를 통해 또 다른 방식의 불교적 사유를 번안 작품에 용해한다. <반야 아재>는 절간 '반야사'에서 애국 계몽운동을 위해 수행하며 법명 '반야'를 받았던 박이보(조성하 분)를 중심인물로 설정해 1930년대 말 민족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고민했던 청년 지식인으로 소환한다. 주목해봐야 할 것은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는 '반야'와 '아재'라는 중의적 의미이다. 반야는 세상의 현상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경상도 지역에서 아저씨를 '아재'로 호칭하던 방언을 차용한 조광화는 이를 불교적이면서도 언어 유희적인 제목으로 확장했다.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와 인간을 뜻하는 아재를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해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한국적 정서와 불교적 성찰이 담긴 <반야 아재>로 새롭게 번안했는데, 창작수준이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의 배경이 1930년대 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이라는 점이다. 정미소를 운영하며 한옥에서 살아가는 박이보와 원작의 마리야에 해당하는 양말례(손숙 분), 조카 소냐로 분한 서은희(심은경 분)가 살아가는 인근에 사찰 반야사가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대사를 들어보자. "넌 신념도 확고하고 계몽 정신으로 불탔었잖니. 글쎄 얘가 예전에 저 백화산 아래 '반야사'로 들어가 애국계몽운동도…"(양말례) "'반야사' 이야긴 그만 좀 하세요! 가족의 생활도 못 챙기면서 무슨 계몽이냐면서, 이 집 상속권도 뺏어가더니, 이제 와서 여성잡지에서 주워듣고 계몽이요?! 제가 공부한 애국계몽하고 그 계몽이 다르다는 건 알기나 하세요?"(박이보) <반야 아재>의 반야사와 백화산은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공간이다. 조광화는 실재 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공간을 번안의 모티브로 반야사를 박이보의 잃어버린 청춘과 애국 계몽운동의 이상이 시작된 장소로 재구성한다.
백화산 아래 반야사는 단순한 수행 공간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 청년 지식인의 꿈과 좌절,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열망이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박이보가 정미소를 운영하는 것도 눈에 띄는 설정이다. 실제로 충북 영동군 황간면 일대는 경부선 철도가 지나고 평야 지대가 발달해 일제강점기 쌀 생산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구조 속에 농촌의 현실을 상징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1930년대 말은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조선인들이 더욱 억압받던 시기였다. 나라를 잃은 상실감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가치체계가 무너져가던 시대적 혼란은 체홉의 바냐가 느끼는 허무와 좌절을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체홉의 19세기 말 러시아가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과도기의 불안과 허무를 담고 있다면, 조광화의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은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좌절과 시대적 불안을 투영하는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여기에 조광화는 원작 <바냐 아저씨>의 세레브랴코프 교수에 해당하는 인물인 서병후(남명렬 분)를 설정한다. 천주교 성당 허드렛일꾼의 아들로 태어난 서병후는 선교사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성장한 인물이다. 조광화는 그를 단순한 성공한 지식인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혼종적 지식인으로 그려낸다. 이런 점에서 원작에서 세레브랴코프 교수가 영지를 팔자고 말하자 바냐가 총을 들고 소동을 벌이는 장면을 식민지 조선의 맥락으로 옮겨온다. <반야 아재>에서도 서병후가 한옥과 정미소를 포함한 재산을 처분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은 서병후를 이해하는 핵심 장면이다. "낙후한 이 시골과 달리 경성이나 인천, 군산 같은 큰 도시는 정미소가 나날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크기만 하고 미궁 같은 이 한옥집, 남은 전답에 임야를 팔면 인천에 넓은 부지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이보와 양말례가 살아가는 한옥은 1814년 순조 시대에 지어진 낡은 한옥이다. 박이보 집안이 오랜 세월 걸쳐 빚을 갚아가며 소유하게 된 공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한옥은 조선의 역사를 이어온 가옥(家屋)이고, 정미소는 조선인의 노동과 생존, 그리고 삶의 역사가 싸인 공간이다. 서병후가 이 공간을 팔자고 제안하는 것은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이자 식민지 체제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서병후와 박이보의 대립은 단순한 재산 처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반야 아재>는 무너진 국가와 분열의 시대, 타협하는 지식인의 모순, 인생의 허무와 삶의 성찰을 사유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원작의 깊이가 조광화식 번안의 넓이로 확장된 느낌이다. 대본에 깨알처럼 달린 번안 주석들도 인상적이다. 언어와 생활풍속, 유행어, 만요, 하이킹 문화,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 배경 등을 세심하게 설명해 놓은 것만으로도 체홉의 러시아 농촌사회를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으로 옮겨온 조광화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성과 모던한 생활, 불교적 사유를 하게 하는 설정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들이 묶여 조광화 특유의 해학과 철학으로 쌓여 있다. 이러한 시대적 설정들은 1939년이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 역시 또 다른 바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야의 조카 서은희(심은경 분)가 마지막에 건네는 위로의 대사는 불교적으로도 깊게 와닿는다. "가슴을 찔러대던 꼬챙이들은 슬그머니 녹아내려 사라지고, 어느 크고 따스한 손이 우릴 보듬어주죠.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정말요. 아무렴요. 오고말고요." 크고 따스한 손이 보듬어주길 기다리는 것은 불교적 자비와 구원의 바람이다. '그 손'은 삶 자체일 수도 있으며 반야의 지혜일 수도 있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처럼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에 반야와 서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실과 삶의 허무를 견디며 새로운 시대와 희망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 충북 영동군의 한옥과 연못의 무대
무대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감각된다. 낡은 한옥이지만 조선의 기품이 느껴지는 당당한 무대이다. 초라해져 가는 한옥 무대를 하수 쪽 가까이에 배치하고, 그 뒤편은 마치 철골 구조물이 산을 에워싸듯 둘러쳐져 있어 고립된 공간의 이미지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에서 점차 밀려나고 쇠락해 가는 조선의 운명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무대이다. 한옥이 몰락하는 조선의 역사와 식민지 조선을 상징한다면, 그 뒤편을 둘러싼 구조물은 근대화와 식민지 체제가 강압적으로 밀려오던 시대의 압박감을 드러내는 이미지로 보인다. 섬과 같은 한옥은 따뜻하게 빛나고, 때로는 어둠 속에 잠긴다. 빛의 변화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조선의 역사적 기억과 감정의 생명선을 드러내면서도 시대의 불안과 고립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조명의 구도( 조명, 정태진)가 감각적이다.
한옥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일본 순사와 연못이다. 물은 흐르고 순환되며 채워져 가는 생명이다. 연못의 물은 흐르지 못하고 넘치지도 않는다. 한옥 연못의 물은 말라가고 있고, 조광화는 2막 후반 비가 내리는 설정을 보여준다. 연못과 누마루, 정미소와 한옥 위로 내리는 비는 식민지 조선의 상실과 아픔을 씻어내려는 정화의 이미지로 작용한다. 그 뒤편으로는 일본식 정미소가 보인다. 만요의 설정은 식민지 조선의 애환이면서도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체홉식 분위기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우울하다.
1막부터 익살스러운 일본풍의 만요인「전화일기」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도 조광화식이다. 「왕서방 연서」,「세상은 요지경」,「오빠는 풍각쟁이야」를 극 전체의 배경음악으로 쓴 것은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적절하게 이식(移植)하고, 그 시대의 생활 감각과 정서를 환기하는 매우 탁월하면서도 감각적인 선택이다. 만요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유행한 대중음악의 한 형식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유행가다(대본 참고). 한옥과 정미소, 백화산과 반야사를 상상하게 하는 공간 위로 흘러나오는 "모시모시, 아 모시모시 혼쿄쿠 후타센 나나햐쿠 하치쥬 하치요. 할로우, 할로우, 당신이 정희씨요"라는 만요 곡으로도 식민지 근대의 현실을 조광화는 강렬한 청각적인 메시지로 활용한다. .
1막은 "녹차 드려요", "생각 없어요."라고 받아치는 마점점과 안해일의 무감각하고 건조한 대사로 시작된다. 마점점(정경순 분)은 원작 <바냐 아저씨>의 유모 마리나 라는 인물로 오랫동안 박이보 집안을 보살펴온 존재이다. 병객 환자를 돌보는 의사 안해일(김승대 분)은 원작에서 아스트로프가 자연을 통해 미래를 이야기했다면, 조광화의 안해일은 식민지 조선의 자연과 숲의 현실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안해일에게 자연과 조선의 숲은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숲과 철새, 동물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점차 황폐해져 가는 조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양말례(손속 분)는 모던 여성 잡지를 읽으며 변화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누마루에서 『모던여성』을 읽는 모습은 조선의 한옥으로 스며든 식민지 근대의 풍경을 상징한다. 양말례는 사위인 서병후의 학문적 권위와 근대적 교양을 동경하면서도 원작의 마리야처럼 절대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유교적 가치관을 벗어날 수 없는 조선인 여성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양말례는 식민지 근대와 조선의 전통이 공존하던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오영란(임강희 분)은 원작에서 옐레나 안드레예브나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조광화는 옐레나를 단순히 아름답고 권태로운 여성으로 해석하지 않고 식민지 조선의 근대성과 욕망을 체현하는 인물로 설정한다. 오영란은 대구 출신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한 유학생이다. 안해일이 윤심덕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 식민지 조선에서 신교육을 받은 모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유학과 성악 교육으로 근대적 교양을 배웠지만, 삶의 충만함까지 주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오영란은 근대적 욕망을 보이면서도 완전한 조선인도, 엘리트적인 일본인도 될 수 없었던 식민지 근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원작의 소냐인 서은희(심은경 분)는 식민지 조선의 미래와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로 재구성된다. 안해일을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도 절망하지 않고, 삼촌 반야 아재의 상실과 아픔을 끌어안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을 찔러대던 꼬챙이들은 슬그머니 녹아내려 사라지고…."라고 말하는 서은희의 위로는 체홉의 소냐가 보여주었던 위로를 넘어 반야의 자비와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 조광화식 번안(飜案)의 무대, 원작의 바냐
조광화식으로 번안된 <반야 아재>는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 외에는 대체로 원작의 플롯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영란을 향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박이보와 안해일, 안해일과 오영란의 키스 장면, 박이보의 상실과 권총 소동은 원작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또한, 서병후가 한옥과 정미소를 팔고 인천으로 옮겨 더 큰 정미소를 세우자고 제안하는 장면도 세레브랴코프 교수가 영지를 처분하려는 설정과 맞닿아 있다. 조광화는 원작 플롯의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중첩해 체홉의 개인적 허무와 상실을 조선의 역사적 상처와 시대적 성찰로 확장하는 것이다.
특히 한옥과 정미소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재산 처분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조선의 역사와 삶이 축적된 공간을 지키려는 박이보와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서병후의 대립은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다른 태도를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반야는 나라를 잃은 조선인의 상실과 좌절, 무력감을 보여주는 인물이면서도 오늘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옥의 무대는 3막까지 진행되면서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에 따라 서서히 구조물들이 움직인다. 이동하는 구조물과 시간은 불교의 공의 세계를 환기한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 역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소멸하며 새로운 시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반야 아재>에서 특별한 장면은 막간극과 4막이다. 은희가 작업복 차림으로 정미소로 나오고, 호루라기 소리에 누마루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무대는 한옥 뒤편으로 보이던 정미소 공간을 전면으로 드러낸다. 목제 울타리 뒤로 그로테스크한 정미소가 모습을 드러내고, 철골 구조물과 직사각형의 거대한 낙하통이 매달려 있다.
무대 중앙 상부에 매달린 정미소 오브제는 한국인의 핏줄과 숨통을 이어온 한국인의 쌀의 의미를 환기한다. 결국 박이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조선의 삶과 기억,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였을 것이다. 정미소 낙하통에서 쏟아져 내리는 도정된 쌀이 박이보를 뒤덮는 장면은 연출적으로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수탈의 식민지 조선을 살아간 삶과 역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으로 읽힌다. 서병후와 오영란이 떠난 뒤 반야를 향한 서은희의 대사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우리 살아가요. 힘겨운 낮과 기나긴 밤들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하루하루 살아나가요."서은희의 독백은 나라를 잃은 식민지 조선인의 삶에 대한 애도이자 위로이다. 조광화는 체홉의 소냐가 말했던 위로를 넘어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그렇게 아파도, 우린 도망가지 않았구나. 살아갔구나."
서은희의 대사는 오늘의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위로이다. 식민지 조선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조광화식 위로의 언어이며,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국립극단의 조광화 번안 <반야 아재>는 번안과 무대의 이미지가 탁월한 작품임에도 4막에서 정미소 구조를 전면화하면서 극이 다소 역사극처럼 평면화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히려 그 이전까지 한옥구조 안에서 보여준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인물들의 내면, 그리고 반야가 지닌 성찰의 의미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한옥의 이동과 회전, 연못과 비, 양수기와 후면 이미지들이 상징적으로 융화되었던 무대에 비해 4막의 정미소 공간은 닫힌 공간의 한계를 보인다. 오히려 3막의 이전의 공간과 흐름을 연계해 확장했다면 어땠을까. 연출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다. 그럼에도 조광화가 번안한 <반야 아재>는 식민지 조선의 역사와 오늘의 시대를 관통하며 성찰하게 만드는 탁월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기주봉은 이번에도 이기진 역을 통해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자 한량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쓸쓸하게 그려냈다. 조성하는 반야의 상실과 좌절,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적 고뇌를 묵직하게 표현해냈다. 남명렬은 서병후를 통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지식인의 노쇠함과 현실주의자의 이면을 설득력 있는 인물로 전달했다. 심은경은 서은희의 위로와 희망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고, 손숙은 전통과 근대 사이를 살아가는 양말례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김승대는 안해일을 통해 자연과 숲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성찰을 안정감 있게 그려냈고, 임강희 역시 식민지 근대 모던 여성의 욕망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무엇보다 마점점으로 분한 정경순의 존재감은 돋보인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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