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소.오늘은, 또 몇십 리, 어디로 갈까.산으로 올라갈까,들로 갈까,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김소월은 '길'(1925)이라는 시에서 실향민의 비애와 유랑민의 방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어제도 오늘도 길 위에 서 있지만, 갈 곳도 머물 자리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지향 없이 떠도는 나그네임을 웅변한 것이다.
현진건의 단편 '고향'(1926)에서 작중 화자가 서울행 기차 안에서 만난 그는 차림새가 기이했다. 안에는 저고리를 입었지만 밖에는 기모노를 두르고 아랫도리에 중국식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3국의 옷차림이 뒤섞인 그의 모습은 식민지 시절 떠돌던 망국민의 처지를 대변한다. 그는 곧 참담한 조선 민중의 초상화였다. 만주와 일본까지 떠돌아다니며 청춘을 소진했던 삶도 그랬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1940)은 표류하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고독과 정한을 구구절절하게 풀어냈다. 작사가 고려성이 밤새 일경의 취조에 시달리다 풀려난 새벽녘, 희뿌연 선술집에 앉아 담뱃갑의 여백에 적은 울분과 회한의 문구였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 어디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 '나그네 설움' 노랫말의 백미는 바로 이 구절이다. 일제의 검열로 뒤바뀌지 않았더라면 1절 가사가 되었을 내용이다. 김소월의 '길' 위에 '나그네 설움'이 짙게 깔렸다. 그것은 해방 후 청록파 시인 조지훈과 박목월의 나그네 서정으로 환생한다.
김소월의 '길'보다 앞서 발표한 염상섭의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는 청개구리를 해부하는 장면처럼 식민지 현실을 냉철히 관찰한 작품이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메타포로 3·1운동의 좌절에 따른 지식인의 무력한 고뇌와 절망적 심리를 사실적으로 투영했다. 그것은 암울하던 시대의 회의적 우울증이자 정신적 방황을 포착한 것이다. '나그네 설움'이 배어나온 원천인지도 모른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1940년대는 일제의 수탈과 유린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다. 한민족의 설움과 고통도 그만큼 크고 깊었다. 백년설이 '나그네 설움'에 이어 부른 '대지의 항구'는 먼 이국땅을 떠다니던 겨레의 심신을 어루만져준 노래였다.
'대지의 항구'는 '버들잎' '이정표' '나그네' '단봇짐' 등 노랫말의 한국적 정서와 낯익은 풍경에도 불구하고 친일가요의 불명예도 안고 있었다. 일제의 만주 이민정책을 미화한 영화 '복지만리'의 삽입가였기 때문이다. 리듬도 경쾌하다. 시대 상황에 반하는 역설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대지의 항구'를 그리며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해야 했을 것이다. 식민지 나그네들의 숙명적 여로였다.
'자고 나도 사막의 길 꿈속에도 사막의 길, 사막은 영원의 길 고달픈 나그네 길...'.앞서 나온 고복수의 노래 '사막의 한'(1934)은 식민지 현실을 황량한 사막에 은유했다. 사막은 민중의 정신적 고독을 상징하는 심리적 공간이다. 나그네를 모티프로 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감성이다. 하지만 '사막의 한'이 지닌 정한은 대외적 절규가 아닌 체념적 토로에 가깝다. 1930년대 시대 정서가 그랬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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