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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폐역이 된 경산 삼성역, 문학은 남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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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 그늘 밑에 이제는 문이 닫힌 삼성역이 서 있다. 정두나 기자.
우거진 나무 그늘 밑에 이제는 문이 닫힌 삼성역이 서 있다. 정두나 기자.

10분마다 한 번씩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근처에 심겨진 나무들은 몸을 떨며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기차의 굉음이 잦아들고 나면,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시골 동네는 다시 고요해진다.

외지인들이 찾아오던 벚꽃 철마저 지나간 지금, 삼성역의 풍경은 더욱 쓸쓸하고 조용하다. 이제는 사람이 내리지 않는 폐역이 돼서다. 사람 소리 대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곳에는 한 소설가의 삶이 묻어 있다.

◆ 귀향의 시작, 삼성역

"삼성, 홈의 그 하얀 현관 앞에서 나는 무심코 호주머니를 뒤지어 차표를 꺼내보았다".

이동하 작가의 '우울한 귀향'은 삼성역에서 시작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막막함에 시달리다 귀향을 결심한 주인공 윤의 혼잣말이다. 유년시절 전쟁을 겪은 주인공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에 이른다. 이후 윤은 고향 경산에서 과거를 반추한 뒤, 다시금 고향을 떠나며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

주인공의 삶은 지역 작가 이동하와 떼놓을 수 없다. 이동하 작가의 고향도 이곳이어서다. 그는 삼성역 주변 조용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태어난 건 일본이지만, 워낙 어린 시절 일본을 떠나 경산을 고향이라 여겼다.

이를 기념하는 문학비는 삼성역 바로 옆 샛길에 터를 잡았다. 여름날의 무성한 풀숲 속에서 문학비는 오늘도 오가는 열차를 마주보고 서 있다. '향토 출신 작가'라는 이동하 작가의 수식어는 그를 지역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경산의 애정 어린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산 삼성역 옆 샛길에 자리 잡은 이동하 작가 문학비.
경산 삼성역 옆 샛길에 자리 잡은 이동하 작가 문학비. '우울한 귀향'의 시작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정두나 기자.

◆ 기차는 떠나도 문학은 남고

이곳에서 겪은 이야기는 고스란히 소설이 됐다. 초등학교까지 도보로 10분 거리인 작은 시골동네의 풍경은 '우울한 귀향'의 배경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 겪은 6.25 전쟁과 대구로 이사 간 이야기,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은 '장난감 도시'에 오롯이 담겼다.

여러 장편소설을 쓴 이동하 작가의 첫 시작은 1966년 신춘문예였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전쟁과 다람쥐'를 펴내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백여 편에 달하는 단편을 꾸준히 써내며 문학가의 삶을 이어갔다.

또 새로운 문학가가 탄생하도록 힘을 썼다. 목포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30년 가까이 지망생들을 가르쳤다. 각종 문학 협회의 자리를 도맡고, 지역 사회에서 문학 강의를 이어 나가기도 했다.

그가 소설적 영감을 얻었을 곳을 돌아보고자 모교인 남천초등학교까지 천천히 걸었다. 인도와 차도 구분 없이 잘 깔린 도로 위에는 자동차를 보기 어려웠다. 눈높이보다 낮은 담장 너머, 온갖 식물이 자라고 있는 주택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화려한 도심의 소음 대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주인인 곳, 경산 삼성역과 남천면의 골목길들. 비록 주인공 윤의 귀향은 '우울'했을지 몰라도, 그 우울을 딛고 피어난 이동하의 문학은 이곳 경산의 고요한 풍경 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기차 소리가 잦아든 후의 삼성역 인근 산책길. 이제는 산책길과 주택, 공장 일부만 남은 조용한 동네에서 이동하 작가가 나고 자랐다. 정두나 기자.
기차 소리가 잦아든 후의 삼성역 인근 산책길. 이제는 산책길과 주택, 공장 일부만 남은 조용한 동네에서 이동하 작가가 나고 자랐다. 정두나 기자.

◆ 세 번의 반성, 세 명의 성현

역과 지명도 쉬이 넘길 수가 없다. 삼성(三省)이라는 한자에는 '세 번 되돌아보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하루 세 번 자기가 한 일을 반성하라는 뜻의 고사성어 '삼성오신(三省五身)'과 같은 한자다. 경산에서 '삼성'이라고 하면 보통 삼성현(三聖賢)을 떠올리지만, 삼성역과는 한자가 다르다.

삼성현은 경산이 낳은 세 명의 현인으로 원효와 설총, 일연을 의미한다. 원효는 신라 671년에 통불교를 제창하고,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한국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 중 하나로 꼽힌다.

설총은 신라 중대의 문장가로, 한글 창체 전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된 '이두'를 집대성했다.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미(美)보다는 바른 도리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 고대 신화와 설화를 모두 모아 엮어낸 '삼국유사'의 아버지 일연도 경산에서 났다. 그는 민중들의 입과 입을 타고 내려오는 한민족의 뿌리를 기록하는 동시에, 당대 사람들의 삶과 세계관을 꼼꼼하게 남겼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록했던 세 성현의 발자취 위에 또 하나의 문학적 숨결이 더해졌다. 세 번의 반성과 세 명의 성현을 품은 땅, 경산에는 우리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깊고 단단한 문장들이 남았다.

경산시립박물관 앞 삼성현 동상. 매일신문 DB.
경산시립박물관 앞 삼성현 동상.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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