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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현대인이 원하는 '작지만 똘똘한 도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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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포스트 오피스 스퀘어. 위키피디아
미국 보스턴 포스트 오피스 스퀘어. 위키피디아
일본 오사카 덴노지공원 입구 덴시바(TEN-SHIBA). 오사카관광국
일본 오사카 덴노지공원 입구 덴시바(TEN-SHIBA). 오사카관광국

◆작을수록 더 치밀해야

'잔디광장'을 킬러 콘텐츠로 배치한 '작지만 똘똘한 도심 공원' 사례는 선진국 곳곳에 있다.

미국 보스턴 금융가의 포스트 오피스 스퀘어는 지하 주차장 위에 만든 작은 잔디광장이자 주변 직장인들의 점심 쉼터다. 일본 오사카 덴노지공원 입구 덴시바(TEN-SHIBA)는 역세권 잔디광장 주변에 카페와 식당, 편의시설을 붙였다.

일본 도쿄 시부야 미야시타파크. 미야시타파크 인스타그램
일본 도쿄 시부야 미야시타파크. 미야시타파크 인스타그램

일본 도쿄 시부야 한복판 미야시타파크는 1953년 만들어진 공원을 1966년 주차장 위 공원으로 탈바꿈시켰으나 시간이 지나며 노후화한 걸 2020년 옥상에 잔디 공간을 깔고 스포츠, 쇼핑, 휴식 기능을 층층이 배치한 사례다. 미국 댈러스 클라이드 워렌 파크는 도심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위에 공원을 얹은 독특한 구조다. 여기에 푸드트럭과 주민 대상 무료 제공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를 가미했다.

이들 사례가 말하는 건 하나다. 도심 공원은 면적이 작을수록 더욱 치밀해야 한다는 것. 잔디만으로는 부족하고, 나무만으로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앉는 방식, 먹는 방식, 이동하는 방식, 그늘을 찾는 방식, 낮과 밤의 이용 방식까지 하드웨어와 콘텐츠 가리지 않고 완성도 높게 설계돼야 한다. 그래서 현대 도심 공원은 '녹색으로 남겨둔 땅'이 아니라 '시민의 시간을 받아내는 장치'에 가깝다.

미국 댈러스 클라이드 워렌 파크. klydewarrenpark 인스타그램
미국 댈러스 클라이드 워렌 파크. klydewarrenpark 인스타그램

◆서울 도심 곳곳 오아시스

실은 서울 도심에 비슷한 풍경이 연속으로 펼쳐진다. N서울타워가 보이는 남산 백범광장, 롯데월드타워 아래 월드파크 잔디광장,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열린송현녹지광장,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등은 모두 잔디와 피크닉, 인증샷과 체류가 결합되는 공간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인 청계천도 사례로 곁들일 수 있다. 청계천은 잔디광장 형태는 아니지만, 도심 속 일상에 작은 피난처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은 계열이고 좀 더 높은 효능을 보이고 있다. 서울 도심을 관통하던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물길과 보행 공간을 되살린 청계천은 사무실과 상가와 도로 사이에서 단 몇 계단만 내려가면 물소리와 그늘, 산책로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꼭 잔디가 아니어도 도심 속 오아시스가 가능하다. 중요한 건 자연의 형식이 아니라 바쁜 도시 생활 중 잠시 몸과 시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체류의 틈을 만드는 일이다. 청계천 물길은 일본 교토가 잘 보존해 관광 요소로는 물론 도심의 숨통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시라카와·다카세가와·오카자키 같은 물길도 떠올리게 하고, 콘크리트로 덮을 때 훗날 복원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대구의 여러 복개천들도 떠올리게 한다.

야외도서관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 연합뉴스
야외도서관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 연합뉴스

◆숫자가 말하는 도심 체류 수요

작지만 똘똘한 도심 공원에 대한 수요는 각종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도서관에 따르면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천을 책 읽고 쉬는 야외공간으로 바꾼 서울야외도서관은 2024년 4월 18일~11월 10일 약 7개월간 300만명의 방문객을 모았다. 2022~2024년 누적 방문객은 약 5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서울야외도서관을 찾은 시민 5천521명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91.3%가 '만족한다'고 답하는 등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1권 이상 책을 읽은 독서자 비율은 85.4%였다.

한국리서치가 2024년 11월 8~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원 인식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주 3회 이상 가는 공간으로 산책로는 34%, 근린공원은 21%를 꼽았지만, 규모가 큰 공원은 12%에 그쳤다. 일상적으로 가기 쉬운 작은 공원의 이용 빈도가 높다는 뜻이다.

접근성도 차이를 보였다. 소규모 공원에 대해서는 도보로 이동한다는 응답이 80%나 됐고, 자신의 주거지 등에서 10분 이내 접근 가능하다는 응답이 49%였다. 반면 대규모 공원은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간다는 응답이 70%, 이동 시간에 10분이 넘게 소요된다는 응답이 88%였다.

서울 청계천에서 독서하며 여가를 보내는 시민과 관광객들. 연합뉴스
서울 청계천에서 독서하며 여가를 보내는 시민과 관광객들. 연합뉴스

최근 공원 이용 트렌드는 '산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구글맵 리뷰를 활용한 한강공원의 이용자 인식과 공간 매력도 연구'(2025, 한국조경학회지)는 서울 망원·반포·여의도·잠실 한강공원의 이용 행태와 공간 인식을 분석했다. 연구는 한강공원이 여가 활동, 휴식, 경관 감상 등이 함께 이뤄지는 대표적 도시여가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봤다.

특히 리뷰 분석에서는 산책, 자전거, 운동 같은 일상적 이용뿐 아니라 돗자리, 텐트, 치킨, 맥주, 라면, 전망, 야경, 일몰 같은 키워드도 함께 나타났다. 공원은 걷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복합적 체험 공간이 됐다.

이 변화는 한강공원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볼 수 없다. 연구에선 공원별 이용 행태와 공간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짚었다. 결국 좋은 공원은 실제 이용자의 경험과 공간별 매력을 읽어 맞춤형 운영 전략을 세울 때 만들어진다.

추가 조건도 분명하다. '1·2기 신도시 공원 이용자의 만족도와 인식 분석'(2024, 한국조경학회지)은 분당·일산·동탄·광교·운정 등 수도권 1·2기 신도시 9개 공원 이용자 1천800명을 조사했다. 공원 이용자들은 대부분 도보로 접근했으며, 보통 1~2시간 이내로 이용했다. 공원 전체 만족도에는 보행시설, 수목 및 식재, 수경시설, 휴게시설, 문화시설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는 도심 공원을 잔디 중심 체류 공간으로 바꾸자는 말이 곧 아무 데나 돗자리를 펴게 하자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더 정교한 관리가 필요하다. 밤에도 안전해야 하고,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야 하며, 화장실부터 크고작은 시설 하나하나가 잘 관리돼야 한다. 앞서 살펴본 브라이언트 파크와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이 노숙인 체류와 치안 이미지를 개선한 사례이고, 릿세이광장이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하며 음주를 전면 금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덴마크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 얀 겔의
덴마크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 얀 겔의 '삶이 있는 도시 디자인'(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 책 표지

◆사람이 머무는 공원으로

도심 한복판의 잔디 공간은 사치가 아니다. 그늘과 의자와 작은 물길도 마찬가지다. 매일 도시의 번잡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쉼표로 볼 수 있다.

덴마크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 얀 겔은 자신의 대표 저서 '삶이 있는 도시 디자인'(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에서 도시설계의 출발점은 건물이나 도로가 아니라 사람의 생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삶이 먼저, 공간이 다음, 건물은 마지막"이라고 요약했다. 도심 공원의 성패도 같은 기준으로 따질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나무가 심겼는지보다, 그 나무와 잔디와 길 사이에서 시민의 일상이 실제로 머무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머무르기 좋다는 특징이 주로 잔디광장에 매개되고 있는 건 그런 맥락일 터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윌리엄 H. 화이트의
미국 도시사회학자 윌리엄 H. 화이트의 '작은 도시 공간의 사회 생활'(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 책 표지

미국 도시사회학자 윌리엄 H. 화이트는 자신이 쓴 '작은 도시 공간의 사회 생활'(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 및 동명의 다큐멘터리에서 뉴욕의 작은 광장과 공원을 관찰한 결론을 밝혔다. 그는 "사람을 가장 끌어당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고 짚었다. 좋은 공공 공간은 조형물이나 장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앉고, 보고, 먹고, 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순간 비로소 살아난다.

브라이언트 파크 운영 경험을 정리한 앤드루 M. 맨셸은 한층 실무적인 결론을 내린다. 그는 책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배우다'(Learning from Bryant Park: Revitalizing Cities, Towns, and Public Spaces)에서 브라이언트 파크의 성공을 거창한 설계 한 번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맨셸은 1991년부터 10년 간 브라이언트 파크 복원 업무에서 공연, 영화 상영, 공원 임대 등 주요 프로그램을 직접 추진한 인물이다.

브라이언트 파크 운영 실무를 맡았던 앤드루 M. 맨셸의
브라이언트 파크 운영 실무를 맡았던 앤드루 M. 맨셸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배우다'(Learning from Bryant Park: Revitalizing Cities, Towns, and Public Spaces) 책 표지

그가 보기에 공공 공간을 살리는 일은 완공식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된다. 어떤 의자가 편한지, 잔디가 얼마나 잘 관리되는지, 화장실이 깨끗한지, 음식과 행사가 공원 이용을 방해하지 않고 끌어들이는지 등을 계속 살피고 조정해야 한다. 실제 브라이언트 파크의 성공담에는 프랑스식 녹색 이동식 의자를 고르는 과정, 중앙 잔디를 시험과 실패 끝에 관리해낸 과정, 꽃과 클래식 음악이 있는 화장실, 영화 상영과 공연 같은 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된다. 설계도면 위의 공원이 아니라 매일 관리되고 운영되는 공원이 사람을 붙잡았다는 얘기다.

맨셸이 전하는 교훈은 잔디광장을 만든다고 곧장 도심의 거실 기능을 수행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이 다시 찾는 공원이란 의자 하나, 그늘 하나, 화장실 하나, 프로그램 하나를 계속 손보는 운영의 결과다.

미국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의 의자와 테이블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구성된 작은 의자 및 테이블은 아이들 용도다. 황희진 기자
미국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의 의자와 테이블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구성된 작은 의자 및 테이블은 아이들 용도다. 황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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