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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없는 삶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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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
손미나 지음/ 코알라컴퍼니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지난 10일, 안토니오 가우디 타계 100주기를 맞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축성식이 교황 레오 14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화려한 조명 쇼와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으며 온 도시의 심장이 하나의 빛을 향하던 생생한 순간을 SNS에서 생중계하며 공유한 이가 있었다.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 그는 성당을 정면으로 마주한 자기 집 테라스에서 가슴 벅차고 찬란했던 바르셀로나의 밤을 기꺼이 모국의 친구들과 나눴다.

손미나가 누구였더라? 순간, 자주 보지도 않았던 TV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떠올렸다. 허참과 가족오락관 공동 MC였던 사람인가, 연예프로그램 진행자였던가, 저녁 뉴스 앵커였나, 익숙한 이름과 얼굴인데도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재기발랄하고 당찬 외모만큼이나 털털한 진행 솜씨가 발군인 아나운서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고백하자면 그녀의 행보를 알게 된 건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한참 지나 여행 작가와 사업가로 대형서점 매대의 단골손님이 된 시점부터였다.

아나운서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방송국을 휴직하고 스페인으로 떠난 유학 생활 이야기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출간하고 개정판을 내기까지 20여 년의 시간, 손미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한국과 스페인을 잇는 민간 외교관이자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맞은편에 거주하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잘나가는 순간에, 뜻대로 일이 잘 풀리는 상황에서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모험과 호기심 많은 성품의 소유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세상사에 도통하여 무에서 시작해도 금세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반면에 손미나는 "쉬고 싶었고 너무나 간절히 공부하고 싶었다."고 휴직 사유를 밝히고 있지만 이를 현실로 만든 건 내면의 단단한 힘이었다.

책에는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세네갈 거부 미스터 디엥을 만난 일화가 나온다. 저자가 호주 교환학생으로 1년을 유랑하던 시절(스페인 유학 10년 전)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베푼 조건 없는 호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얻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상대가 아무리 부자이고 무언가를 베푸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도 아무에게나 호의를 보이진 않는 법. 누가 보더라도 총기 있는 손미나의 남다른 아우라가 미스터 디엥의 시선을 붙잡았으리라.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고 과감히 내려놓고 유학을 떠나고 책을 내고 사업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일련의 과정 또한 학생 시절부터 싹튼 에너지와 품성의 결과일 터.

저자는 "스페인에서의 1년이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을 뒷걸음치게 하지도 않았다."고 적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열정 넘치는 내면 여행기로 봐도 무방하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내가 애정을 바친 영화감독 중 한 명은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다. 어머니와 여성과 인간애를 탁월한 미장센으로 다뤄온 인물. 때문인지 스페인은 내게 남다르다. 정열의 나라, 투우와 플라밍고와 돈키호테와 피카소와 가우디의 나라. 프랑코 치하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문화예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 최고의 관광 대국이 된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낯익은 아나운서의 표정과 목소리로 전해 듣는 느낌은 매우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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