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 한숨부터 나온다. 거실에는 아이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있고, 싱크대에는 아침에 먹은 그릇이 그대로 쌓여 있다.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아이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니 밤 10시. 이제야 진짜 퇴근인가 싶어 한숨 돌리려는 찰나, '삐리삐리삐~'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됐다는 소리가 눈치 없이 흘러나온다.
"누가 좀 대신 치워줬으면…." 워킹맘이라면 한번 쯤 해봤을 생각. 그런데 그 '도움'이 굳이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일만 조용히 처리해주는 존재라면 말이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몸을 가진 '피지컬 AI'가 인간의 노동까지 대신하려는 시대가 오고 있다.
◆ 로봇청소기는 시작일 뿐
작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도 핵심 화두 중 하나는 단연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더 주목받은 건 이러한 로봇들이 공장이나 산업 현장을 넘어 '가정'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테슬라는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고, 미국 AI 로봇 기업 1X테크놀로지는 집안일 수행용 로봇 '네오(NEO)'를 선보였다. 이 로봇은 설거지와 빨래는 물론, 문을 열어주거나 물건을 가져다주는 기능까지 수행한다. 가격은 약 2천900만원 수준. 월 구독형 모델도 등장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가정마다 자동차처럼 로봇을 1~2대씩 보유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로보틱스 연구소를 신설하고 글로벌 로봇 기업인 피규어 AI 등에 투자했다. LG의 서비스 로봇 '클로이드'는 사람 손처럼 움직이는 정교한 팔을 통해 접시를 정리하거나 빨래를 집는 동작까지 구현한다.
단순 반복 노동을 넘어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존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는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사 노동 시간을 최대한 줄여 인간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 AI는 이제 '생각'만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발전 속도가 빨라진 배경으로 '월드모델(World Model)' 기술을 꼽는다. 기존 로봇이 단순히 카메라로 사물을 인식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주변 환경과 물체 관계, 이후 상황 전개까지 내부적으로 예측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컵 하나를 집더라도 단순히 위치만 인식하는 게 아니다. 어느 방향으로 손을 뻗어야 넘어뜨리지 않는지,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을 먼저 시뮬레이션한 뒤 움직인다. 쉽게 말해 로봇이 인간처럼 '머릿속으로 먼저 행동을 그려보고 움직이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궁극적인 시장 역시 공장보다 '가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간 생활 공간 자체가 사람 신체 구조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데니스 홍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계단, 문손잡이, 주방 도구 등 대부분의 생활 환경은 인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며 "결국 로봇도 사람과 비슷한 형태여야 실제 생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 리얼월드의 류중희 대표 역시 "사람이 일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결국 사람 손처럼 큰 물체와 작은 물체를 모두 다루고 공구까지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로봇도 결국 엄마가 관리"
하지만 기대만 있는 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육아 카페에서는 벌써부터 "로봇 상전 모시는 시대 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로봇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센서 청소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오류 관리 등이 필요하다. 한 워킹맘은 "예전에는 집안일을 직접 했다면 이제는 로봇 오류를 해결하고 센서를 닦고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며 "가사노동이 사라진다기보다 노동의 형태만 바뀌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로봇에게 "정리해", "가져와" 같은 명령형 말투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보다. 집안 구조와 가족 대화, 생활 패턴까지 모두 알고 있는 로봇이 해킹당할 경우 사생활 침해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시대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노동과 관계, 생활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디지털 AI와 달리 물리 세계의 AI는 작은 오류 하나도 실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성과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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