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우주를 꿈꾸던 소년, 별 찍는 사진가 되다…김기현 천문교육업체 타라(TARA) 대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김기현 타라 대표가 미시령 옛길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촬영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기현 타라 대표가 미시령 옛길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촬영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소년은 별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주소년단 활동을 했다. 천문학자가 돼 우주왕복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겠다는 꿈을 품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아마추어 천문 동호회에 가입해 별을 관측하며 밤하늘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어느 날 밤하늘의 경이로움을 사진으로 찍어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고등학교를 시절 학교를 걸어서 다니며 버스비 500원을 모아, 대구 교동상가에서 13만원짜리 중고 필름카메라 1대를 샀다. 30년 뒤 소년은 최근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천문교육업체 타라(TARA)를 운영하는 김기현(40) 대표 이야기다.

그에겐 '타라 대표' 외에도 직함이 많다. 천체관측 강사이자 사진가, 산악인이 그를 수식하는 단어다. 특히 산악 분야에선 2017년 코리안웨이 인도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해 히말라야 팝수라(6,451m)를 새로운 루트로 등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산과의 인연 덕분에 그의 사진엔 늘 산과 밤하늘이 함께 등장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자신을 '천체사진가'가 아닌 '별산사진가'라고 부른다.

지난 18일 자신의 고향이자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를 찾은 김 대표는 사진을 찍고 전시를 하는 이유에 대해 "히말라야 설산에 서서 능선 위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느꼈던 감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사진을 본 이들의 가슴 속에 별 보러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0부터 22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선보인 사진전 제목이 '별스민, 1/75'다. 어떤 의미인가.

▶우리말로 '별이 스며든다'는 의미다. 대부분 밤에 찍은 사진이지만 낮에 찍은 것도 있는데, 태양 또한 별이기에 그 빛이 스며든 풍경이라고 봤다. 천문학을 전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몸을 구성하는 '인'(P) 같은 원소들도 아주 오래전 1세대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우주로 보낸 것들이다. 인간의 몸도 결국 별에서 온 원소들이 순환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자 또한 별이라는 생각으로 이름 붙이게 됐다.

제목처럼 작고 희미하게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별빛을 전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며 흑백으로 작업했다. 화려함을 걷어내고 소박하게 어둠을 표현함으로써, 관람객이 진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제가 태어난 1986년은 헬리혜성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던 해였다. '1/75'에서 분모인 '75'는 헬리혜성의 주기로, 제가 75세가 되면 그 혜성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꾸준히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숫자 75를 선택했다.

그 앞의 숫자 1은 제 작가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이란 의미다. 경제적인 형편이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카메라 장비를 수차례 사고 팔며 작업을 접을까 고민도 많았다. 이젠 용기를 내어 진지하게 임하고자 한다. 죽기 전, 그 혜성을 다시 보는 날까지 75번의 전시를 채워보겠다는 작가로서 다짐의 의미를 '1/75'에 담았다.

김기현 타라 대표가
김기현 타라 대표가 '2017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했을 때 촬영한 은하수 사진. 쿠타타치 베이스캠프에서 촬영했다. 본인 제공

-서울대 천문학과 출신이다. 사진작업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천문학과를 나오면 정말 달나라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중학교 때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여전히 별 보는 게 좋았다. 그 무렵 천문 동호회에 가입했다. 별에 관심을 갖는 어린 아이가 기특했는지 동호회 어른들은 망원경도 빌려주고 집 앞까지 와서 차를 태워 보현산천문대에도 데려다주셨다. 그 덕분에 일찌감치 천문학자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고 목표했던 서울대 천문학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건 천체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버스비를 아껴 돈을 모아 카메라를 샀다. 중고로 50만원 정도 하던 '니콘 FM2'를 사고 싶었지만 가장 저렴했던 '펜탁스 SP'를 살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지금도 가끔씩 이 카메라를 쓴다. 이번 전시작 중 1점도 펜탁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천문학자의 꿈은 접은 건가.

▶워낙 좋아하다보니 지금도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미련이 남진 않는다. 사실 대학 입학 때부터 동기들과 격차가 좀 있었다. 대부분이 천문학과 2학년 수준을 배우고 온 특목고나 민사고 출신이었던 반면, 저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사교육 도움 없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 들어온 케이스였다. 천문학을 위해선 고교시절 '물리학Ⅱ' '지구과학Ⅱ' 등이 필요한데 제가 다닌 학교에선 의대·약대 입시를 위한 수업밖에 없었다. 이로 인한 한계는 대학 내내 이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평가 경쟁에서 뒤처지다보니 공부에 대한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긴 했지만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버텼다. 하지만 점점 관측이나 기기 분야처럼 활동적인 일이 성향에 좀 더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군 입대 전엔 송암천문대에서 근무도 했다.

대학 졸업 이후 4년 동안은 서울대에서 계약직 교직원으로 일했다. 처음 3년간은 서울대학교 천문대 기술원으로 노후한 기존 천문대 재건축을 총괄하는 업무를 했고, 나머지 1년은 천문대 보조연구원으로 일했다. 천문대에 대해 잘 알고, 관측 경험이 풍부한 점을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서울대문리대산악회 출신이다. 히말라야 팝수라 원정등반은 어떻게 가게 된 건가.

▶서울대 근무가 끝나갈 무렵인 2016년 말, 1년쯤 쉬면서 남미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던 때였다. 대학산악연맹 송년회 자리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창호(서울시립대산악부) 대장이 이끄는 '2017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 대원 중 일부가 취업이 돼 2명을 급히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급히 지원서를 만들에 냈는데 대원으로 선발됐다. 첫 해외 원정등반이었다. 이 인연으로 이듬해엔 창호 형이 제게 원정대장을 맡아보라며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 데날리(6,190m)를 함께 다녀왔다. 한 달 뒤엔 서울대문리대산악회의 러시아 알타이 벨루하(4,506m) 등반을 갔다.

창호 형과는 그해 가을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7193m) 원정대'에도 함께하기로 했는데, 친동생이 많이 아파 대구로 내려와 병간호하느라 함께하지 못했다. 저를 대신해 인도 원정을 함께 다녀온 부경대산악부 (이)재훈이가 대원으로 참여했다. 이 원정에서 모든 대원은 등반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기현 타라 대표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김기현 타라 대표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그해 12월 '히말라야에 내린 빛'이란 이름으로 첫 개인 사진전을 열었다.

▶인도 팝수라 원정 때 촬영담당이기도 해서 사진이 많이 있었다. 첫 원정이기도 했기에 책이나 사진전 등으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사고가 난 거다. 구르자히말 원정대원이었던 임일진(한국외대산악부) 형과 (사진전과 관련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기에 약속을 지키자는 생각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 등반에 참여했던 형들과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을 골라 전시했다. 제겐 그들에게 쓰는 편지 같은 의미였다. 당시 사진전 부제도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를 기리며'였다. 장례를 치른 지 두 달 뒤의 일이다.

-'타라'는 언제 창업했나.

▶2020년이다. 구르지히말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게 산이고 별인데, 산과 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났다. 한국천문학회의 천문올림피아드 일과 영재교육원 수업,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등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활동을 제외하곤 2019년을 거의 칩거 생활로 보냈다. 그러다 창업을 했다. 천문학의 대중화를 꿈꾸며 벌인 일이었다. '타라'라는 이름도 네팔어로 '별' 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엔 천문학과가 왜 7곳밖에 없을까에 대한 생각을 늘 했다. '그거 공부해선 밥 빌어 먹는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과학 교양서 중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수십 년 부동의 베스트셀러다. 우주 전반을 다루면서도 철학적인 얘기나 인문학적인 내용으로 정말 쉽게 풀어낸다. 칼 세이건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제가 천체망원경으로 직접 목성과 토성을 보면서 천문학자를 꿈꾸고 사고의 폭이 넓어졌듯 그런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주고 싶다.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

▶비슷하다. 우린 밤하늘을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 땅만 보며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밤하늘을 이렇게 많은 별이 떠 있다는 얘길 하고 싶다.

이번 전시를 열며 생각했다. 마음이 힘든 누군가가 제 사진을 보며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가끔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3년 전 구르자히말을 다녀왔다. 사고가 난 곳을 둘러보며 추모비에 앞에서 대원들과 마음의 인사도 나눴기에 괜찮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와보니 촬영한 사진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여는 것조차 힘들었다. 슬픈 생각이 들어 사진을 보기가 싫었고 작업도 많이 못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위해 사진을 다시 마주하며 스스로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는 걸 느꼈다. 이젠 좀 즐겁게 다시 산에 다녀보자, 좋아하는 별도 다시 찍어보자는 마음의 각오가 서는 것 같다.

김기현 타라 대표가 미시령 옛길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촬영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기현 타라 대표가 미시령 옛길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촬영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