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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임상준] 반도체와 '샤인머스캣'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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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뛰어든 포도 주산지의 몰락, 시장 무시한 과잉 공급이 부른 참사
세계적 공급 과잉, AI 호황 뒤 숨은 '반도체 빙하기' 맞을 수도

김장호 구미시장이 1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취임식을 열고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김장호 구미시장이 1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취임식을 열고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반도체 포기는 없다'는 문구와 함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구미시 제공
임상준 서부지역취재본부장
임상준 서부지역취재본부장

경북 김천에서 평생 포도 농사만 지은 촌로(村老)는 올해 초, 평생 손에서 놓지 않던 포도 전지가위를 내려놓았다. 소백산맥 추풍령 자락의 큰 일교차와 감천 유역의 비옥한 사질양토가 키워낸 김천 포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당도와 품질을 자랑했고, 그는 일찍이 김천 포도의 경쟁력에 주목했다. 포도 품종의 시세와 경쟁력에 따라 캠벨에서 거봉으로, 다시 '샤인머스캣'으로 품종을 키워냈다. 특히 초창기 샤인머스캣 한 상자(2㎏)에 3만8천원까지 값이 나가 공산품으로 치면 영업이익이 70~80%가 나 촌로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신품종 포도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전국의 농가가 앞다퉈 샤인머스캣 식재에 뛰어드는 등 과잉 공급이 맞물리면서 한 상자에 최근 1만원 아래 선까지 폭락했다. 시장의 수급 법칙을 외면한 맹목적 추종이 결국 평생을 바친 노농(老農)의 은퇴를 앞당긴 셈이다. 논을 메워 포도밭으로 만들고 비닐하우스까지 둘러친 유무형의 자본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였다.

농촌의 작은 포도밭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 사이클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자 혈관인 반도체 산업에서 그대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호남 반도체 800조원 투자'는 기업의 냉철한 경영 논리나 시장의 수급 예측을 배제한 채 특정 세력이 정치적 기반 마련을 위한 '관치 경제'란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반도체는 고도의 입지 조건과 천문학적인 인프라가 필수적인 장치 산업이다. 전력 소모가 극심하고 하루 수십만 톤의 용수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핵심 인재들이 밀집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미 용인 등 수도권에 계획된 대규모 클러스터조차 전력과 용수 확보 문제로 차질을 빚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객관적인 반도체 인프라 데이터 없이 호남에 대규모 설비를 분산 배치하겠다는 것은 관치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반도체의 필수 인프라인 전기와 물이 풍부한 경북 구미를 배제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현재 반도체 글로벌 시장은 공급 과잉의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더불어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의 YMTC까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낸드플래시 증설 경쟁에 미친 듯이 뛰어들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붐에 힘입어 빅테크 기업들이 빚을 내어 데이터센터를 지으며 일시적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반도체는 철저한 사이클 산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금리 인상이나 수요 위축이라는 변수가 등장해 글로벌 공급 과잉의 파고가 닥치는 순간,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과잉 투자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과거 신화의 주역이었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몰락과 치킨게임의 잔혹한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샤인머스캣의 몰락은 한 농가의 아픔으로 끝나지만, 반도체 산업의 판단 미스는 기업의 도산과 국가 경제의 파국이라는 뼈아픈 대가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혹시나 이번 호남선에 올라탄 반도체 팹 투자가 기업들의 자의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굴레가 씌워진 타의적 결정이었다면, 반도체 투자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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