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형주가 연일 급등락을 거듭하며 고점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시장의 시선이 잇따라 실적을 내놓는 네덜란드 ASML(15일)과 대만 TSMC(16일)로 쏠리고 있다. 두 회사가 제시할 설비투자 계획과 장비 수주 강도가 인공지능(AI) 메모리 업황의 지속성을 가늠할 잣대인 만큼 최근 불거진 '피크아웃(고점 통과)' 논란을 잠재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간밤 뉴욕증시에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전 거래일보다 27.29% 오른 193.92달러에 마감했다. 하루 전 9.32% 급락했던 흐름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열기는 국내로도 옮겨붙어 본주인 SK하이닉스도 이날 오전 9시42분 현재 전 거래일보다 10.61% 오르고 있다. 앞서 13일 장중 15% 넘게 빠졌다가 하루 만에 3.69% 반등한 데 이은 것이다. 지난 13일 10.70% 폭락했다가 전일 3.34% 반등한 삼성전자 역시 같은 시각 5.32% 급등 중이다.
최근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는 급등락을 지속하고 있다. 급락과 급반등이 교차하는 배경으로는 펀더멘털 변화보다 수급과 투자심리 요인이 지목된다. ADR 상장 이벤트가 끝나며 나온 차익실현 매물에 중동 리스크, 국내외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기계적 매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간밤 반등에 불을 붙인 것은 바클레이스 보고서였다. 바클레이스는 SK하이닉스 ADR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과 함께 목표주가 330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직전 종가(152.35달러) 대비 약 117%, 14일 종가 기준으로도 약 70%의 상승 여력을 반영한 수준이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월가의 낙관론이 확산하면서 얼어붙었던 투자심리가 빠르게 되살아났다.
시장의 관심은 반도체 기업 실적으로 향한다.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 눈높이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존보다 12% 낮춘 62조3000억원을, 한국투자증권은 8% 낮춘 60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다만 증권가는 이번 하향이 실적 악화가 아니라 장기공급계약(LTA)에 따라 당장의 판매 단가가 낮게 잡힌 데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고점론을 판가름할 최대 이벤트로 ASML과 TSMC의 실적 발표가 지목된다. 두 회사는 반도체 공급망의 최상단에 위치해 업황의 방향을 먼저 보여주는 '풍향계'로 꼽힌다.
먼저 국내 시각으로 이날 오후 2시께 실적을 내놓는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기업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첨단 공정 투자를 늘리면서 EUV 장비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ASML이 생산능력 확대나 매출 전망 상향을 제시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메모리·파운드리 업체들의 생산능력 확대 기조를 감안하면 반도체 장비 시장 전망치에 대한 상향 언급 및 긍정적 가이던스 제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TSMC의 설비투자(캐펙스) 계획도 주목된다. TSMC가 설비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곧 이 회사에 생산을 맡기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들의 주문이 그만큼 많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AI 가속기 수요와 직결되는 만큼 TSMC의 투자 확대 여부가 AI 밸류체인 전반의 수요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3개월 합산 매출액은 이미 긍정적으로 확인됐다"며 "AI 수요에 대한 과잉 논란이 불거져 있기 때문에 TSMC 실적 발표를 통해 이러한 우려가 완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섹터의 흐름에 대해 성급히 약세장을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고 지적한다. 국내 반도체주가 고점 대비 30~40% 하락하며 극심한 약세장처럼 느껴지지만 한국 증시는 전 세계 시장의 3% 수준에 불과한 만큼 65%를 차지하는 미국 증시의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 증시의 대표적 반도체 지표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흐름도 이런 진단에 힘을 싣는다. 지난 10년간 이 지수가 고점 대비 20% 넘게 빠진 것은 2020년 코로나19,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지난해 관세 충격 등 세 차례뿐이었다. 이런 대형 악재가 없을 때는 대체로 20% 안팎에서 바닥을 다졌다. 현재는 이런 구조적 악재가 두드러지지 않는 만큼 반등 국면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산업의 성장성도 반도체 업황을 떠받치는 근거로 꼽힌다. AI 확산이 이어지는 한 반도체 수요는 구조적으로 뒷받침될 수밖에 없고, 기업(B2B)과 소비자(B2C) 시장 모두 AI 도입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성장 여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부터 본격화하는 2분기 실적 시즌이 코스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비반도체 업종과 수출주의 실적 호조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적 시즌을 앞두고 나타난 코스피 조정과 지수 레벨 하락으로 다수 업종의 저평가 매력이 확대됐고, 고평가 영역에 있던 반도체 업종도 저평가 구간으로 진입했다"며 "코스피 7000대가 중요 지지선으로, 이를 이탈할 경우 언더슈팅 국면에 진입할 수 있지만 변동성을 활용한 분할매수와 매집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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