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화양읍 다로리 마을. 경부선 남성현역 인근 철길을 따라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120여 가구, 220여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며 한평생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촌을 목표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2014년 서삼열(47) 사회적기업 다로리인 대표와 그의 선후배 등 일곱 가족이 함께 이곳에 자리 잡으며 시작됐다. 서 대표는 처음 몇 년 간 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농촌을 경험했고, 2022년엔 다로리인을 설립해 마을 빈집 등을 카페, 돌봄, 교육, 공유오피스 프로그램 거점으로 만들어 운영해왔다. 지금은 농촌의 삶을 길게는 1년 넘게 경험해볼 수 있는 '마을 호텔'이라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을 준비하며 마을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지난 13일 마을 거점 공간 중 하나인 '카페 다로리'에서 만난 서 대표는 "많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아이를 둔 가정이 조금씩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도시와 농촌 간 교육 격차 등을 줄여, 젊은 세대들이 다로리를 보며 결혼 이후 삶을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7명이 함께 귀촌을 하게 된 건가. 왜 청도였나.
▶대학 졸업 후 친했던 동아리 선후배를 만날 때면 가끔씩 공동체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지인이 땅을 준다고 해서 의성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직접 가서 보니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가 대구권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이 어려운 위치이다 보니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등의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았다.
그 무렵 청도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던 친구가 청도를 제안했다. 함께 청도 쪽 땅을 보러 다녔고 지금 살고 있는 다로리 마을을 발견하게 됐다. 경산과 인접해있어 대구를 중심으로 한 도시권 문화를 함께 누릴 수 있고, 경산·대구로 출퇴근하는 것도 가능해보였다. 그렇게 일곱 가구가 다로리로 들어오게 됐다. 2천100여㎡(660평) 정도 되는 복숭아밭을 사서 대지로 전환해 집을 짓고 살게 된 거다.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마을로 들어온 것에 대해 주민들이 의아해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는 없었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컸던 만큼 처음부터 마을 분들과 관계 맺는 일에 공을 들였다. 집을 지을 부지를 매입하고 처음 마을 분들께 인사드릴 때부터 마을잔치에 선물을 챙겨갔고, 이사를 하면서는 모든 가구에 떡을 돌렸다. 마을에 살면서는 아이들 돌잔치 때 떡을 나누고 연말에엔 팔토시나 양말 같은 작은 선물을 드리며 마을 어른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게다가 다로리 마을은 폐쇄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생활하다보니 동네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주셨다. 오히려 지금은 마을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다로리인이 펼치는 대다수 마을 사업도 주민 분들의 협력이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처음부터 마을 활동에 뜻이 있었나.
▶아니다. 처음엔 저희들끼리 밭을 빌려 감이나 자두, 들깨 농사를 짓고 판매도 해보는 농업 관련 시도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정도였다. 이곳에서 살다보니 마을과 농촌지역 문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농촌에선 마을에 일이 있을 때면 늘 이장님이 마을방송을 한다. 언제부턴가 마을방송에서 부고가 자주 들려왔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나올 때도 있었다. 문득 이게 그냥 인간적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지역 소멸이라는 사회문제를 매일 대면하고 있는 거구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우리 마을도 결국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이 마을은 결국 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됐다.
또 하나는 학교 문제였다. 다로리 마을엔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전교생이 많을 땐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저희가 이사 왔을 당시엔 50명 정도였고, 지금도 4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졸업을 하게 되는데 신입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농촌에선 학교가 없어지는 순간 마을이 급속도로 무너진다. 이런 이유로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하는 고민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2020년쯤의 일이다.
-첫 사업지가 '카페 다로리'였나.
▶그렇다. 이곳은 예전 보건진료소 사용되다 비워진 공간이었다. 그 무렵 청도군에서 농림부의 농촌유휴시설을 활용한 창업지원사업을 제안했다. 이곳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고 청도군과 함께 준비해 공모에 선정됐다.
1층은 카페, 2층은 주민들이 모여 지역을 대표할만한 음료나 빵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2층의 경우 이후 청년 창업지원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는 로컬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되다 지금은 저희 마을을 포함한 인근 지역 여성들을 위한 공유오피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2년 이 공간을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면서 사회적기업 다로리인을 꾸리게 됐다. '다로리'라는 마을 이름에, '사람'을 뜻하는 '인', 마을 안을 의미하는 'in'을 더한 이름이다.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뜻을 담았다. 사업 영역은 돌봄, 공간 재생, 지역 문제 해결 등 크게 세 가지다.
-특히 다로리인이 시작한 마을 돌봄 사업은 청도군 내 7곳으로 확장되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곳에 살며 아이를 키우다보니 농촌지역 초등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는 점에 놀랐다. 별도의 신청 없이 악기 수업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이 제공되고, 졸업할 때까지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드럼 등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수학여행도 전액 지원된다.
문제는 하교 후였다. 아이들 갈 곳이 마땅치 않았고, 도농 간 교육 격차도 실감했다. 젊은 세대 유입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직접 돌봄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 '스토리 영어'라는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마을 탐험, 목공, 사물놀이 등으로 과목을 늘렸다. '완주하는 아이들'이란 이름의 단축마라톤 훈련 프로그램도 있다. 올해는 이 시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란 생각에서 '마음 건강'과 'AI 교육'을 추가했다.
1년 정도 운영하고 나니 성과가 꽤 좋았다. 청도군의 제안으로 경북도 공모사업에 도전하게 되면서 2024년부터는 저희 마을 포함 4개 마을에 돌봄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게 됐다. 지금은 마을돌봄공동체 육성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총 7개 마을이 참여하고 있다. 다로리인은 7곳 돌봄공동체 지원사업을 맡고 있다.
-농촌 빈집 활용은 여러 지자체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다로리인의 사업은 어떤 차별점이 있나.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점일 것 같다. 지난해 농림부 공모에 선정돼 추진하고 있는 마을 호텔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 관광객을 위한 단기 체류 시설이 아닌, 확보한 빈집 상당수를 농촌 삶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장기 체류자를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가족 단위 주민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마을에 아이들 발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겠다는 고민의 연장이자 실험이기도 하다.
-어떤 마을을 꿈꾸나.
▶이 마을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삶의 전체 경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다로리 마을을 보며 '여기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란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청년들에게 농촌도 충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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