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효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입구만 있고 나오는 문은 없는 것 같다. 파고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젓갈 등이 코리아 발효식의 리더격. 그 속을 파고드는 두 음식이 있다. 바로 식혜(食醯)와 식해(食醢). 발음이 비슷해 참 구분하기 힘들 것 같다. 한자로만 적어놓으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식혜는 단술, 감주 등으로 불리는 '음청류', 식해는 생선을 베이스로 발효시킨 '젓갈류'로 보면 된다. 생선, 소금, 곡물, 엿기름물을 써서 만든 '어식해'에서 생선과 소금을 빼고 곡물과 엿기름에 물을 많이 써서 만들어 달인 것은 '감주', 밥알을 건져두고 물만 달여 식혀서 여기에 생강즙, 고춧가루, 밥알과 잘게 썬 무 등을 넣어 삭힌 게 식혜다.
전라도는 '젓갈의 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경상도로 넘어오면 '장아찌' 문화로 변주된다. 젓갈도 동해안권으로 오면 식해로 상응된다. 현재 속초의 가자미식해, 영덕의 홍치 밥식해가 투톱을 이룬다. 서해안권이 '새우젓갈', 동해안권, 특히 감포권은 '멸치젓갈', 울진권은 '꽁치젓갈'이 강세를 보인다.
◆식해 연대기
한국의 식해는 워낙 기반이 탄탄해 일본 식문화에 영향을 준다. 음식사학자들은 한국의 젓갈이 일본 스시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훗날 붕어초밥의 일종인 '후나즈시'로 변형되고 그게 현재 일본의 상징격인 '니기리스시'로 정착된다.
식해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일화 하나가 있다. 1079년 중국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시인인 소동파가 필화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다. 아들과 상의해 옥에 밥을 넣을 때 생명이 위태로우면 식해를 들여보내 위기를 통보키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살림이 궁핍해진 아들은 돈을 빌리려고 친척에게 옥바라지를 부탁하고 먼길을 떠난다. 그런데 이 친척이 전후 사정도 모른채 식해를 옥에 들여보낸다. 소동파는 절망한다. 그는 당시 황제였던 신종에게 시 두 수를 올린다. 그런데 신종이 감화해 소동파의 죄를 감해 좌천한다. 잘 못 들어간 식해가 오히려 전화위복 소동파를 살린 셈이다.
◆젓갈에서 식해로
조선 때는 이 식해를 '어자'(魚鮓), 혹은 '자'(鮓)로도 불렀다. 자는 '젓'이란 의미다. 젓갈이 각종 어패류와 소금이 생산되는 해안지방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젓갈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전통 벼농사문화권에서 상용되면서 식해로 건너간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밥이 사용되면 '식해', 소금이 축을 이루면 '염해'(鹽醢)로 구별했다. 염해는 젓갈이다. 식해는 10%의 소금에 엿기름과 밥 등 곡물에다 고춧가루·무를 섞어 담근 거다. 전분이 발효하면서 유산이 생기고, 신맛이 나면서 부패가 방지된다.
젓갈은 소금과 생선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데 식해로 건너가려면 쌀의 전분이 꼭 필요하다. 곡식 '식'(食)·젓갈 '해'(醢) 자가 합쳐 식해가 된다. 우리의 염장법은 단순히 어패류에 국한하지 않고 육류와 조류 등도 사용됐다. 정조 때는 '해식중미'라는 젓갈도 있었다. 돼지고기로 젓갈을 담근 뒤 그 위에 쌀밥을 얹어 발효시킨 거다.
젓갈은 기능성 장류와도 연동되게 된다. 어패류를 이용한 '어장'(魚醬), 육류를 이용한 '육장'(肉醬), 어패류와 육류를 같이 넣고 담근 '어육장'(魚肉醬) 등으로 나뉘게 된다. 그 가짓수가 무려 14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현재 남도밥상에서는 세 종류의 젓갈이 빠지면 맹탕이 된다. 첫째 민물 새우로 담그는 '토하젓', 전어 내장으로 만드는 '밤젓', 마지막은 '황석어젓갈'이다. 굴로 담근 양대 젓갈로는 서해안 '어리굴젓', 그리고 통영권의 '진석화젓'.
한
국에는 참으로 다양한 식해가 많았다. 한국음식사학자 이성우에 따르면 한국의 식해 전통은 1600년대의 음식 문헌에 등장한다고 한다. 함경도에선 가자미, 강원도에선 북어, 황해도에선 도루묵, 강원도 속초 등지에선 오징어로도 만들었다.
◆영덕밥식해
2000년을 넘어서면서 느닷없이 강구 밥식해가 전국적 선풍을 일으킨다. 이게 포항 죽도시장 별미로도 정착을 하게 된다.
영덕밥식해는 지역민에게는 안동식혜 정도로 로컬리티를 갖고 있다. 이 식해는 동해에서 잡은 횟대(홍치), 가자미, 오징어 등을 주재료로 만드는 동해안 전통음식으로 겨울철 별미. 생선의 물기를 말려 적당한 크기로 썰고 엿기름으로 하루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시킨 다음 기장 고두밥과 채썬 무, 다진 마늘, 생강, 소금,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다시 숙성시키는 이중 발효과정을 거친다. 엿기름은 생선의 뼈를 부드럽게 해 뼈를 통째로 먹을 수 있도록 삭히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부재료다. 그 맛이 '삼콤'하다고 한다. 달콤‧새콤‧매콤한 맛이다. 엿기름 성분의 달콤한 맛과 고춧가루의 매콤함, 발효과정에서 새콤한 맛이 형성된다.
이 식해는 한동안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영덕 강구농협 농가주부모임의 노력 덕분이다. 강구농협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한다. 횟대밥식해로 시작해 가자미·오징어 밥식해로 늘어났다.
◆일본 스시한테도 영향
고온 다습한 동남아시아에도 염장법이 발달하였다. 말레이시아의 '벨라찬', 인도네시아의 '트라시', 필리핀의 '바고옹 알라망'과 '바고옹 이스다'는 모두 새우젓이다. 액젓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케첩 이칸', 말레이시아의 '부두', 베트남의 '느억맘', 태국의 ''남쁠라', 필리핀의 '파티스', 미얀마의 '응아피' 등이 있다. 초창기 일본 스시는 바다 생선이 아니고 민물에 사는 붕어를 밥을 넣고 삭혀 꼭 식해같았다. 이걸 후나즈시라고 하는데 일본 사가현의 대표적 전통음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후나즈시류가 요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패스트푸드형으로 진화된 게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밥집에서 먹는 니기리스시이다. '니기리'란 일본말로 '쥔다'는 말인데 다시 말해 '손으로 밥알갱이를 먹을만한 크기로 꽉 쥐어 만든 스시'란 의미다. 곽에 넣어 모양을 만들어내면 '하코스시', 배모양으로 만들면 '밧데라스시'.
◆안동식혜
식혜의 경우 여느 고장에서나 맛볼 수 있지만 유독 '안동식혜'가 좌장격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두 음식은 발효과학이 들어 있고 결국 오늘의 김치류의 저력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특히 식혜는 이렇다 할 음료수가 없었던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숭늉과 함께 사랑받은 디저트 구실을 한다. 믹서커피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안동의 길흉사에서 절대 없어서 안되는 게 식혜다. 특히 안동, 영주, 봉화가 바로 '안동식혜권'이라 보면 된다.
안동식혜는 만드는 방법부터가 대중적 식혜와 차별화된다. 고두밥에다 가로·세로 0.5㎝ 정도로 잘게 썬 무를 잔뜩 넣고 고춧가루 물에 다진 생강을 넣은 후 맥아 가루(엿기름)를 풀고 항아리에 담아 하룻밤 삭혀 식히면 시원하고도 매콤한 안동식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혜는 엿기름으로 고두밥을 삭혀내 가마솥에 달여서 밥알이 동동 뜨게 만든 달콤한 음료수와 비슷하다. 식혜는 삭히고 단술은 끓여야 되는 게 차이점이다. 단술은 모계사회 제사풍습에서 유래한다. 술을 못 드시는 조상에겐 제사상에 술 대신 단술을 올렸다. 실학자 이익은 식혜를 제수로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얼마전 안동 향토음식연구가인 조선행 여사를 와룡면 자택에서 만났다. 실제 만드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푹 찐 찹쌀 지에밥(찐밥)에 체에 밭친 엿기름물과 잘게 썬 무와 생강즙, 고춧가루 우린 물을 넣고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아 저온 발효시킨다. 무를 설탕으로 버무려야 하고 생강이 중심에서 간을 맞춘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밥알이 뭉쳐지면 발효가 어려워진다. 일일이 잘 분리해줘야 한다. 다 발효되면 밥알은 신기하게 삭아서 없어진다. 그 자리에 단맛이 스며든다. 특히 겨울철의 절식으로 쓰였던 것은 감주 계열 식혜와 같이 끓이지 않으므로 삭힌 후 급히 냉각하지 않으면 변질되므로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겨울이 아니면 만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계절과 관계없이 만들 수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자신의 예순살 생신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았는데 그때도 안동식혜를 먹었다. 그때 생신상을 차린 분은 '안동의 황혜성'으로 불리는 조옥화이다. 한때 전주의 1회용 비빔밥 같은 '안동식혜캔'을 개발하려고 했는데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 개발을 포기한다.
여름의 서기(暑氣)가 뼛속까지 파고들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의 식혜와 식해의 맛은 더욱 절정으로 치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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