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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남긴 안동의 '평화의 역사', "전쟁을 끝낸 도시, 사람을 품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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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 '평화공존 한반도 위한 안동 평화의 길'
1차, '고려시대 안동과 수도를 잇는 평화정신' 주제 배영동 교수 강연
안동, 단순한 군사적 요충지 아닌 국가 위기시 평화 회복한 도시 조명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고려시대 안동과 수도를 잇는 평화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엄재진 기자

안동의 고려사는 흔히 '고려 건국 태조 왕건의 고창전투 승리', '삼태사', '공민왕 몽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전쟁 이후 사람을 품고 공동체를 회복시킨 '평화의 역사'였다.

지난 21일 안동시청 웅부관 청백실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동시협의회가 '2026 평화공존 한반도를 위한 안동 Peace Road' 1차 강좌인 '고려시대 안동과 수도를 잇는 평화정신'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열렸다.

배영동 국립경국대학교 문화유산학과 전공 및 대학원 민속학과 교수의 이날 강연은 고려시대 안동을 단순한 군사적 요충지가 아닌, 국가 위기 때마다 평화를 회복한 도시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했다.

◆ 고려 개국의 숨은 정신…'무도(無道)를 끝내는 평화'
930년 고창전투는 고려가 후삼국 통일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하지만 이번 강연은 고창전투보다 앞선 '왕건의 즉위 과정'에 주목했다.

궁예의 폭정에 맞서 홍유·배현경·신숭겸 등이 왕건을 추대한 것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폭정을 거부하고 평화를 선택한 정치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강연에서 배 교수는 이를 '궁예의 폭정을 배척하고 평화를 지향한 건국'으로 해석했다.

안동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태사'(김선평·권행·장정필)는 단순히 왕건 편에 선 지방 호족이 아니라, 강한 힘보다 도리(道理)를 선택해 후백제 견훤의 무도에 맞섰던 인물들로 평가된다.

왕건은 이들의 도움으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했고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고려 건국을 가능하게 만든 힘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무도에 맞선 정의'와 '지역의 연대'였다는 해석이다.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고려시대 안동과 수도를 잇는 평화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엄재진 기자

◆ '안동(安東)'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화의 선언
흥미로운 점은 지명이다. 왕건은 고창전투 이후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켰다.

이날 강연에서는 이 명칭을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전쟁 이후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국가 비전으로 해석한다.

'안동'에는 동쪽을 안정시키고, 분열된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며, 무력보다 백성의 평안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 이름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한 이름이라는 해석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후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은 수도 개성을 떠나 안동까지 피란(몽진)한다. 왕을 지켜준 것은 높은 성벽이 아니었다. 안동 주민들의 환대였다.

특히 왕비 노국공주 일행이 송야천을 건너지 못하자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사람다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안동 놋다리밟기'의 기원이 됐다.

공민왕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안동의 위상을 높이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국가 최고 권력을 향한 충성이 아니라, 피난민을 보호하는 공동체 정신이 역사 속에 남은 사례다.

공민왕이 안동을 선택한 이유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혜비의 외가가 안동 권씨였던 만큼 안동은 위기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적 자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놋다리밟기'·'채붕(綵棚)', 평화를 몸으로 잇다
안동 놋다리밟기는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어 다리를 놓는다.

누군가를 밟기 위해 허리를 굽힌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안전하게 건너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준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다. 현대 사회가 말하는 연대(solidarity)를 고려시대 안동은 몸으로 실천했던 셈이다.

배영동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충렬왕 시기 안동에서 열린 환영회에도 주목했다.

원나라와 일본 원정이라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안동은 전쟁의 기억을 축제와 공동체 문화로 바꾸었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하회탈춤은 풍자와 해학으로 갈등을 풀고, 공동체를 치유하는 문화유산으로 발전했다. 폭력이 아닌 웃음과 비판을 통해 화합을 이루는 것이 탈춤의 핵심 정신이라는 것이다.

특히, 배 교수는 안동의 평화정신을 '환대·위무(慰撫)·화합'이라는 세 가지 가치로 정리했다. 국가적 위기를 공동체의 환대와 치유, 그리고 화합으로 전환한 지역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것.

배영동 교수는 "고려시대 안동은 전쟁 영웅의 도시가 아닌 '평화를 회복한 도시'로 읽어야 한다. 삼태사는 폭정에 맞서 정의를 선택했고, 공민왕 몽진에서는 주민들이 왕실을 품었으며, 놋다리밟기는 공동체가 서로를 떠받치는 연대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유경상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장은 "분단 대립·강화의 시대에 안동이라는 지방 도시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며 "고려사와 안동, 안동과 고려 수도 개성이 서로 손 맞잡는 상상을 하면서 안동의 역사와 문화에서 새로운 평화와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3차에 걸친 강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민주평통 안동시협의회는 21일 국립경국대 배영동 교수의 '고려시대 안동과 수도를 잇는 평화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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