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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황량함과 생명력이 공존하는 인도의 지붕, 레(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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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시가지는 실크로드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오늘도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오가는 활기찬 공간이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 불리는 나미카 라 고개에서는 하늘과 산이 맞닿은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고갯길의 땅, 히말라야의 품속 레로 가는 길

카르길을 떠난 버스는 히말라야 깊숙한 곳의 레(Leh)를 향해 달렸다. 라다크(Ladakh)는 '고갯길의 땅'이라는 이름처럼 수천 미터의 고개를 넘어야 다음 계곡과 마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길 자체가 여행이고, 풍경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내는 대자연의 무대다.

처음 만난 해발 3천718m의 나미카 라(Namika La)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고개다. 깎아지른 암벽과 황량한 산맥이 끝없이 펼쳐지고, 하늘과 산의 경계가 희
미해지는 장관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유한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곧이어 라다크 최고 고개인 해발 4,108m의 포툴라(Fotu La)에 올랐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숨을 고르며 바라본 정상에는 오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산맥들은 파도처럼 겹겹이 이어지고, 세상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아래로 아득한 대지가 펼쳐진다.

포툴라를 내려서자 풍경은 또 한 번 변했다. 푸른 초원은 사라지고 붉은색과 황토색, 회색
이 뒤섞인 암석 세계가 펼쳐진다. 달 표면을 닮은 기묘한 산세는 왜 라다크를 '달의 땅'(Moonland)이라 부르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아찔하고 황량함 한가운데, 길 위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은 라마유루 곰파(Lamayuru Gompa)였다. 10세기 무렵 창건된 라다크의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레 가는 길에 만난 라마유루 곰파는 라다크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 가운데 하나로, 나로파의 명상 동굴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레 시가지는 실크로드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오늘도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오가는 활기찬 공간이다.

산비탈에 층층이 세워진 흰 건물들은 마치 절벽 위 웅장한 요새처럼 보였다. 레로 향하는 길은 계속해서 경이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인도 문명의 젖줄인 인더스강과 험준한 잔스카르 계곡을 흐르는 잔스카르강이 만나는 상감(Sangam) 합류점에서는 두 물줄기가 만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장관을 목격했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을 품어온 강의 역사가 눈앞에 흐르는 듯했다.

마그네틱 힐(Magnetic Hill)에서는 또 다른 신비를 만났다. 자동차가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실제로는 주변 지형이 만들어내는 착시 현상이다. 광활한 황무지 속에서 자연이 만든 거대한 장난처럼 느껴졌다.

레가 가까워질수록 산마루마다 척박한 바위산 꼭대기마다 펄럭이는 오색 깃발은 모든 중생의 행복과 평화를 염원하는 현지인들의 기도였다. 라다크 사람들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기도가 세상으로 퍼져나간다고 믿는다. 척박한 산길을 달리면서도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해발 3천524m. 마침내 옛 라다크 왕국의 수도 레에 도착했다.

가파른 산비탈의 절벽 위, 사람의 접근조차 쉽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곰파는 세속을 떠나 수행하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보여준다.
레 가는 길에 만난 라마유루 곰파는 라다크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 가운데 하나로, 나로파의 명상 동굴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실크로드의 영화를 품은 하늘과 맞닿은 도시 레

라다크의 수도 레에 도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투명하도록 파란 하늘과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희박한 공기다.

레는 한때 인도와 중앙아시아, 티베트, 카슈미르를 연결하던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도시
였다. 1962년 중·인 국경분쟁 이후 교역 기능은 쇠퇴했지만, 1974년 외국인에게 개방되면서 세계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히말라야의 관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거리에서는 어디서나 '줄레'(Jullay)라는 인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라는 뜻을 함께 품은 말이다. 낯선 여행자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줄레를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따뜻한 정이 묻어났다.

한여름의 레는 신비롭다. 황토빛 산맥과 눈 덮인 설산, 그리고 초록빛 오아시스가 한 화면
안에서 어우러진다. 황량함과 생명력이 공존하는 풍경은 현실감마저 흐리게 만든다. 메인 바자르는 레에서 가장 활기찬 공간이다. 골목마다 모직 옷가게와 티베트 수공예품 상점, 카페와 음식점이 이어진다. 파시미나 숄과 은세공 장신구, 불교 공예품들은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틱세 언덕의 틱세 곰파 전망대에서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산맥이 어우러진 라다크의 대표 풍경이 펼쳐진다.
가파른 산비탈의 절벽 위, 사람의 접근조차 쉽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곰파는 세속을 떠나 수행하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라다크의 명물인 살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생과일은 물론 말린 살구와 잼, 주스까지 다양하다. 강렬한 햇살을 머금은 살구는 달콤하면서도 상큼했다. 주황색 열매를 맺는 씨벅톤(Sea Buckthorn)은 이곳의 특산물이다. 비타민 C가 풍부해 '비타민 나무'라 불리며, 씨벅톤 주스는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천연 음료가 되어준다.

음식 문화도 다양하다.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가 뒤섞인 레에서는 전통 빵 캄
비르(Khambir)와 쿨차(Kulcha)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해가 지면 양고기 케밥 노점이 하나둘 문을 열고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차(Tea) 문화였다. 버터티와 밀크티, 솔트티까지 하루에도 몇 번
씩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차 한 잔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삶이 되는 곳, 그곳이 레였다.

레 시내를 굽어보는 레 궁전에서는 황량한 산맥과 도시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난다.
틱세 언덕의 틱세 곰파 전망대에서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산맥이 어우러진 라다크의 대표 풍경이 펼쳐진다.

◆천천히 걸으며 마주하는 라다크의 영혼

레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단연 레 궁전(Leh Palace)이다. 17세기 남걀 왕조가 세운 9층 높이의 궁전은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을 닮아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린다. 궁전 정상에 오르자 황토빛 집들과 초록빛 오아시스, 그리고 설산이 한눈에 펼쳐졌다. 황량함과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레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조금 더 걸음을 옮겨 궁전 위쪽 언덕의 남걀 체모 곰파(Namgyal Tsemo Gompa)에 서면, 3층 높이의 미륵불상 너머로 '하늘 위의 도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입체적으로 펼쳐진 풍경은 여행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해질 무렵 찾은 샨티 스투파는 레 최고의 명소였다. 해발 4,200m 언덕 위에 자리한 순백의 불탑은 석양이 비칠 때 가장 아름답다. 붉게 물든 히말라야와 황금빛 도시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레에서 남동쪽으로 45㎞ 떨어진 헤미스 곰파(Hemis Gompa)는 라다크 최대의 수도원이다. 깊은 계곡 속에 자리한 사원에서는 지금도 승려들의 수행이 이어진다. 주변의 보리밭과 유채꽃밭, 그리고 붉은 가사를 입은 어린 동자승들의 모습은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레 시내를 굽어보는 레 궁전에서는 황량한 산맥과 도시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난다.

틱세 곰파(Thiksey Gompa)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층층이 이어진 흰 건물들은 마치 작은 포탈라궁을 연상시킨다. 15m 높이의 미륵불과 오래된 벽화, 탕카들은 라다크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레는 서두르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도시다. 높은 고도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 하고, 숨을 고르며 풍경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만난다.

황량한 대지와 눈부신 설산, 오래된 불교문화와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가 함께 살아 숨쉬는 곳. 레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잊고 지냈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세상 끝 고원의 특별한 쉼터였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 속에는 헤어질 때마다 건네던 그 한마디가 바람처럼 남아 있다. '줄레'(Jullay).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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