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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그려온 복식인물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가치 있게 활용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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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표준영정 17점 그린 전통 초상화가 권오창
"인물 복식 등 철저히 고증하고 정신까지 담아야"

권오창 화가가 1997년 그린 태조 이성계.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1997년 그린 태조 이성계.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그린 단종 어진. 노산군으로 강봉되기 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전후의 모습이다. 2021년 정부 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됐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그린 단종 어진. 노산군으로 강봉되기 전,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15세 전후의 모습이다. 2021년 정부 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됐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그린 덕혜옹주의 예복 차림.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그린 덕혜옹주의 예복 차림.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작가와의 대화' 참석 차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았다. 이연정 기자

단종, 설총, 김부식, 정도전, 궁예, 허균, 서희, 권율…. 모두 104점의 정부표준영정 중 17점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 표준영정을 가장 많이 그린 동강(東江) 권오창(78) 화가. 지난해 6월 그가 반세기 동안 천착해온 복식인물화 168점을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중 일부를 추려 선보이는 특별전 '우리 옷을 그리다'가 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6일 전시실은 여름휴가와 방학을 맞아 학생, 가족들로 북적였다. 인물들의 다부진 표정과 섬세한 옷 주름 하나까지, 선명한 색으로 되살아난 그의 작품에 모두가 감탄을 이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권 화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작품 기증처로 대구박물관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대구가 섬유의 도시고, 국립대구박물관이 복식문화 연구와 전시에 꾸준히 힘써왔다는 점이 마음을 끌어당겼어요. 앞으로 박물관에 복식문화관도 생긴다고 하니, 내가 평생 일군 작품이 가장 가치있게 잘 쓰일 수 있는 곳이 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업 전 고증부터 철저히"

복식인물화는 전통 복식을 입은 인물을 고증에 따라 그린 초상화로, 얼굴과 함께 그가 입은 옷의 형태와 색, 무늬가 담긴다. 흑백사진으로만 전하던 인물에 색을 입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복식을 한 사람의 온전한 차림으로 되살린다는 점에서 복식사와 회화사를 아우르는 소중한 자료이자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표준영정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의 얼굴을 재현하는 작업을 넘어 인물의 생애와 사상, 당시의 복식과 시대적 배경을 철저히 고증하고, 그 인물이 지닌 정신과 품격까지 화면에 담아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이다.

권 화가는 "표준영정은 지방자치단체나 기념사업회, 문중 등이 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지정되는 것도 아니다"며 "먼저 해당 인물이 국가적으로 추앙받을 만한 인물인지 심사를 거친다. 역사적 공적과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상 인물로 선정되면 본격적인 고증이 시작된다. 인물의 신분과 관직, 사상, 생애는 물론, 당시의 복식과 시대적 특징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살핀다. 작가가 그린 초본 역시 심사를 거치며, 이후 비단에 채색을 입힌 완성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엄격한 검증이 이뤄진다. 색채와 문양, 채색 기법이 해당 인물의 신분과 시대에 맞는지, 미술사적·역사적 가치가 충분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면서도 작가로서는 굉장한 영광입니다. 제가 특별히 유명해서라기보다 한 점 한 점을 성실하게 제대로 그려놓으니 다른 기념사업회나 관련 기관에서 '그 그림을 잘 그렸다. 이 작가는 누구냐'며 다시 선택해 준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에 권오창 화가가 그린 어진들이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국립대구박물관에 권오창 화가가 그린 어진들이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권오창 화가가 쓴 태조 어진 작업일지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권오창 화가가 쓴 태조 어진 작업일지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돼있다. 이연정 기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고증은 전시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9년, 127년 만에 태조 어진을 모사하며 남긴 작업일지를 통해서다.

그는 "태조의 능을 답사하고, 어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고증을 거친 과정, 작업을 하며 느꼈던 감정 등을 써내려갔다"며 "처음에는 나중에 내가 돌이켜볼 수 있도록만 써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것도 한 시대의 족적이 됐다"고 말했다.

전시에서 많은 관람객이 머무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단종의 어진.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그는 영월로 유배됐던 단종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중, 영월군에서 단종 표준영정 작가로 그를 선정하며 작업을 하게 됐다. 그러나 단종의 어진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실물 초상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한 세조 어진 초본에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세조의 이미지와 달리 초상 속 모습은 부드럽고 둥그스름한 인상이었다. 그는 "삼촌인 세조의 용모나 골상, 형식이 가장 가까운 자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진 속 단종의 자세와 배경을 결정하는 과정도 치열했다. 초본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권 화가는 단종이 용상에 앉은 모습, 교의에 앉은 모습, 바닥에 화문석을 깐 모습 등 무려 3개의 초본을 정성 들여 제작해 자문위원회에 제출했다. 결국 여러 논의를 거쳐 세조 어진 초본과 가까운 교의 좌상이 2021년 표준영정 제100호로 지정됐다.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권오창 화가가 지난 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인물의 정신까지 나타내야 진정한 초상"

40년 가까이 전통 초상화를 그려온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신사조(傳神寫照). 단순히 외형을 닮게 그리는 것을 넘어 인물의 정신과 기질까지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외형만 담고 형태만 그린다고 초상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 사람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표현해야 합니다. 눈빛에서도 그 사람이 독립적이고 저항적인 인물이었는지, 문학적이고 학문적인 사람이었는지 등이 드러나야 합니다."

복식과 자세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인물의 얼굴을 잘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16세기 인물이 19세기 복식을 입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을 입혔다면 역사적 인물의 초상으로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

권 화가는 허균의 표준영정을 그렸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허균은 문학가이자 사상가로서 기존 질서에 저항적인 면모를 보였던 인물이지만, 그의 그림에서 그러한 성격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허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록을 통해 알고 있지만, 실제 얼굴을 본 사람은 없잖아요. 결국 역사적 기록과 그 인물의 행적을 통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하고, 그것을 작가가 해석해서 화면에 옮겨야 합니다."

그는 "작가의 탁월한 경험과 추진력에 의해서 선택했을 때 비로소 심사위원들도 '맞아, 저 모습일 거야'라고 공감할 수 있다"며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작가 자신의 고집이나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대한제국 황실가족'. 가로 폭이 6m에 달한다. 이연정 기자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백진복도'. 69명의 아이가 각기 다른 차림으로 등장한다. 이연정 기자

◆"언젠간 단종비도 그려보고파"

권 화가는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중, 100여 가지의 어린이 복식을 담아낸 병풍 대작 '백진복도'와 '대한제국 황실가족'을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어린이 복식은 단순히 예쁜 옷이 아니라, 부모의 애정과 길상(吉祥) 등의 상징이 곳곳에 배어있다"며 "대한제국 황실가족은 가장 어려웠고, 복식사와 인물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책임감으로 작업했기에 애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몰두하는 작업은 임진왜란 때 경북 영천에서 활약한 의병장 정대임의 영정.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의를 거치고 있으며, 지정 결정이 난다면 표준영정으로는 105호, 그로서는 18번째 표준영정이 된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단종비 정순왕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어릴 때 단종과 헤어져 홀로 어렵게 여생을 보냈죠. 단종 어진을 15세 전후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 연령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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