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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직의 삶] 늘어나는 재난, 부족한 방재 인력… 방재직 공무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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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대구 북구 노곡동 마을이 집중호우로 침수된 모습. 매일신문 DB.
지난해 7월 대구 북구 노곡동 마을이 집중호우로 침수된 모습. 매일신문 DB.

◆"30시간째 근무 중" 방재직 공무원의 하루

오전 7시 30분, 하늘이 심상치 않다. 일주일 전부터 예보된 비가 현실이 되려는 듯했다. 김영훈(가명) 씨는 단기 기상예보를 다시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동안 휴식은 없다.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제발 우리 지역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기상청 자료를 토대로 예상 피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대응 매뉴얼을 회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가공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구청 실무회의에 이어 행정안전부 영상회의까지 잇따라 열린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까 자료를 몇 번이고 검토하다 보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기운이 빠진다.

오후 2시, 비가 쏟아지자 상황실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방재직 공무원은 단 두 명. 현장에서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 인력을 배치하고 CCTV로 하천 수위를 확인하는 동시에 재난문자와 대피 상황을 점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 전화가 빗발친다. 강물이 가게 앞까지 차올랐다는 신고, 도로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잇따른다.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상황실을 비울 수는 없다. 현장에 나간 직원들과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쏟아지는 신고 전화에도 응답해야 한다. 숨 돌릴 틈 없는 와중에도 영훈 씨는 속으로 되뇐다.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다음 날 오전 6시, 드디어 비가 그쳤다. 대구는 큰 피해 없이 밤을 넘겼다. 출근길 시민들은 밤새 상황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재난 업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성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설움도 덮치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만약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면 죄책감은 물론,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조사에 짓눌려야 한다.

창밖에는 평온한 출근길이 이어진다. 그는 밤새 끝내지 못한 업무를 다시 펼쳐 들고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신다. "원래 일은 다 힘든 거니까."

대구 도심에서
대구 도심에서 '빗물받이'가 매트로 덮여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시간당 강우량 50㎜ 이상 집중호우가 내리는 상황을 가정해 실험한 결과 빗물받이가 막혀 있으면 침수 면적이 3배 넓어지고, 침수 깊이는 2.3배 이상 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 DB.

재난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태풍과 홍수, 지진과 대형 화재, 붕괴, 대설은 물론 환경 오염과 가스 누출 등의 위험이 일상을 위협한다.

방재직 공무원은 위협에 맞서 한발 앞서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때만 주목받을 뿐, 평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서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견디고 있다. 평상시에는 예방 활동과 시설 점검을 이어가고, 재난이 발생하면 밤을 지새우며 현장을 지킨다. 인력 부족 속에서 기후변화로 더욱 잦고 복합적인 재난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구 구·군에서 근무하는 방재직 공무원 4명에게 그 현실을 들어봤다.

◆ 큰 책임, 작은 힘

풍수해로 인한 피해를 막는 방재직 A씨는 "과중한 책임에 비해 권한이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 A씨는 여름철마다 불법 고무 덮개로 골머리를 앓는다. 상인들이 가게 앞 하수구에서 벌레나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고무 덮개를 임의로 덮어두는데, 이는 엄연한 불법 행위이며 폭우 시 도심 침수를 유발한다.

다만 이 덮개들은 사유물이다. 공무원들이 비가 오기 전에 임시로 '걷어 놓는 것' 외에 아예 강제로 압수하거나 폐기·철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계도, 눈에 보이는 덮개는 열어두는 일뿐이다.

A씨는 "비 예보가 뜨면 공무원과 민간 방재단 인력들이 넓은 달서구 전역을 돌며 무거운 고무 덮개들을 일일이 손으로 걷어내야 한다"며 "비가 그치면 상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하수구를 덮어버려 이 씁쓸한 사투가 매번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평시에도 바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지난 2022년 대구 동구청에서 직원들이 재택치료 환자들에게 전달할 해열제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재택치료 키트를 점검하는 모습. 매일신문 DB.
지난 2022년 대구 동구청에서 직원들이 재택치료 환자들에게 전달할 해열제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재택치료 키트를 점검하는 모습. 매일신문 DB.

◆ 모호한 재난의 경계

방재직 공무원 B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절, 어디까지가 방재 업무인지조차 모호해진 현실을 실감했다.

당시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청소년 20여 명이 한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신고였다. 원래라면 경찰이 담당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오가며 시민들과 접촉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 위험을 최소화해야 했다. 자칫 감염되면 다른 현장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 때문에 현장에 적극 개입하기 어려웠고, 집합금지 여부를 확인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권한을 가진 구청이 대신 나서야 했다.

결국 B씨는 별다른 호신 장비도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수십 명의 청소년을 강제로 해산시킬 방법이 없어 "여기서 모이면 안 된다"며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난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방재직 공무원도 예상하지 못했던 업무가 계속 생겨난다"고 말했다.

◆ 불어나는 업무

이처럼 업무는 갈수록 불어난다. 여기에 현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지침까지 더해지면서 부담은 고스란히 일선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

방재직 공무원 C씨는 현재의 인력 구조를 '역피라미드'라고 표현했다. 행정안전부 등 상급 기관은 재난 업무가 여러 부서로 세분돼 담당자별로 업무가 나뉘어 있다. 반면 일선 구청으로 내려올수록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는 점점 많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태원 참사 이후다. 참사를 계기로 상급 기관에는 다중 인파 밀집 사고를 전담하는 조직이 신설되고 관련 지침도 잇따라 마련됐다. 하지만 일선 구청의 인력은 그대로였다. 기존 업무를 수행하면서 다중 인파 관리 업무까지 추가로 맡게 된 것이다.

C씨는 "상급 기관에서는 여러 담당자가 분야별로 지침을 만들지만, 구청에서는 그 수많은 지침을 한 사람이 모두 숙지하고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급 기관의 지침은 업무 부담을 더 키운다. 행정안전부는 침수 시 지하차도를 신속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지자체 ▷행정복지센터 ▷경찰 ▷민간 관계자 등 4명의 담당자를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 비상 상황에 즉시 연락할 수 있도록 모든 담당자의 개인 연락처도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경찰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므로 담당자가 수시로 바뀐다. 휴무로 자리를 비우는 특정 경찰관의 개인 연락처로 연락하는 것보다, 24시간 운영되는 상황실 연락처를 활용하는 것이 현장에서는 훨씬 현실적이다.

대구 한 구·군에서 자연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D씨는 "상급 기관을 설득해 겨우 개인 연락처 대신 상황실 연락처를 기재할 수 있었다"며 "안전을 위해 담당자를 지정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제도 운영도 현장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 신천 4동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동구자율방재단 회원들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구 동구 신천 4동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동구자율방재단 회원들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 메울 수 없는 빈자리

인터뷰에 응한 방재직 공무원들은 한목소리로 '인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재난 업무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특성이 있지만, 평소 인력은 이를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결국 일반 행정직 공무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난달 대구시와 9개 구·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시 재난 상황실을 운영하는 곳은 모두 7곳이다. 이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권고한 '2인 1조 4교대'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대구시와 중구뿐이다. 나머지 구·군은 권고 인원을 지키지 못했다.

대부분의 구·군은 당직실의 지원을 받아 재난에 대응하고 있다. 대구 서구의 인사 담당자는 "행안부 권고 기준에 미달하는 대신 도시안전망 CCTV나 오픈채팅방 등을 적극 활용해 신속한 상황 접수와 보고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향후 조직 부서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인력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방재직 공무원은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재난은 상황마다 양상이 달라 현장의 경험과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팀장 역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숙련된 인력의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실제로 숙련 인력의 공백은 대체 인력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구시와 9개 구·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육아휴직 등으로 공석이 된 방재직 자리는 모두 2석이었다. 하지만 두 자리 모두 휴직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을 채용하지 않은 채 공석으로 운영됐다.

금호강 산격대교 둔치에서 풍수해대비 훈련에 참가한 지역자율방재단원들이 양수기 작동법을 익히는 모습. 매일신문 DB.
금호강 산격대교 둔치에서 풍수해대비 훈련에 참가한 지역자율방재단원들이 양수기 작동법을 익히는 모습. 매일신문 DB.

◆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쉬지도 못한 채, 끊이지 않는 긴장감에 시달린다. 오랫동안 방재 업무를 맡아온 C씨는 쉬는 날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내가 관리하는 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지자체에 안전관리 책임을 묻고, 담당 공무원 역시 경찰 수사와 각종 감사 대상이 돼서다.

설령 형사처벌을 받지 않거나 최종적으로 면책 결정을 받더라도 부담은 끝나지 않는다. 사고 이후 이어지는 감사와 감찰,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해명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모두 담당자의 몫이다.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이 같은 절차 자체가 극심한 피로감과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방재직 공무원의 업무는 '끝'이 분명하지 않다. 근무시간에는 재난을 대비하고, 퇴근 후에도 혹시 모를 사고에 마음을 졸인다.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잠을 줄여가며 현장을 지키고, 사고가 지나간 뒤에는 책임을 떠안는다. 방재직 공무원들은 재난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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