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을 견뎌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21세기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스크린에 옮겨왔을 때, 우리가 기대한 것은 단순한 신화의 재현이나 압도적인 시각적 블록버스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전 문학이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영웅의 여정이 영화적 질감으로 어떻게 피어나는지에 대한 서사적 탐구야말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가장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다.
감독이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사의 중심축으로 삼은 가장 거대한 주제는 고대 그리스의 환대 규범인 '크세니아', 이른바 영화 속에서 '제우스의 법'이라 불리는 신성한 질서다.낯선 이방인을 신의 대리인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여야 한다는 이 관습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인물들의 비극과 희극을 갈라놓는 핵심적인 도덕적 기준이 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식인 행위는 제우스의 법에 대한 치명적 위반이며, 마녀 키르케가 방문객들을 돼지로 변하게 만드는 행위는 남성들의 무례함에 대한 비틀린 응징이자 주체적 방어로 그려진다. 요정 칼립소는 7년간 오디세우스를 구속하는 '과도한 환대'의 폐해를 보여주며, 페넬로페는 자신의 집을 기생충처럼 갉아먹는 구애자들의 행태를 견디며 제우스의 법을 고통스럽게 수호하는 인물로 대변된다
영화는 원작에 존재하는 신과 인간의 거대한 복합적 관계망에서 '환대'라는 외길을 신중하게 선택해 발췌함으로써, 복잡한 대서사시를 일종의 학술적 에세이처럼 명확하고 밀도 있게 재구성해 냈다.
다만 신화의 또 다른 핵심 축이자 그리스 비극의 정수인 오만, 즉 '휴브리스'를 슬그머니 비껴간 지점은 놀란의 명확한 한계이자 선택으로 남는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들거나 자신의 한계를 잊은 인간이 맞이하는 오만한 운명은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인간적으로 입체화하는 최고의 장치다. 하지만 감독은 신들의 존재 자체를 모호한 환상이나 해석의 영역으로 치워버리고, 오디세우스를 오만한 영웅이라기보다는 현명하고 지극히 실용적인 현대적 해결사로 각색해 버렸다.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결말의 변경이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구애자들을 몰살한 후 평화를 되찾는 원작과 달리, 감독은 오디세우스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고 그를 다시 미지의 바다로 떠나보낸다. 이는 '끝없는 탐구와 방랑'이라는 영웅의 비극적 숙명을 강조하려는 놀란 특유의 각색으로, 고전을 숭배하던 독자들에게는 매우 혁신적이면서도 호불호가 나뉠 핵심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이 모든 호불호를 압도할 만큼 대단하다. 세트장이 아닌 실제 거친 바다 위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해 낸 거친 물결의 질감, 고대 그리스의 웅장함과 기이함을 실사처럼 구현해 낸 시각효과, 그리고 키르케의 섬에서 사내들이 돼지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한 공포와 기괴함은 관객을 순식간에 신화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고대의 문학적 유산을 현대 시네마의 문법으로 재구성하려 한 매우 야심 찬 프로젝트다. '휴브리스'라는 고전적 비극성보다 '환대와 도덕'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앞세우고, 신화를 인간적 스릴러와 모험극으로 재구성한 감독의 선택은 문학적 엄밀함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길지언정, 영화적 쾌감과 완성도 면에서는 시네필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박근혜 직격…"대통령 자질 없던 사람, 박정희 후광으로 대통령"
김민석, 대법원장에 "조희대 씨…퇴학시켜달라고 구걸하는 불량 학생"
국민 65% "개헌 논의?…李 대통령, '연임 안 한다' 먼저 밝혀야"
누군 50만원 받는데…추석 민생지원금, 우리 동네는 얼마?
국힘 진종오·조경태·권영진·서범수 '당원권 정지' 중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