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 주식시장 개미들]. 7월 31일 연합뉴스 동영상 뉴스 섬네일 제목이다. 내용 제목은 소름 돋는다. ["인생 망한 것 같습니다"…큰돈 잃은 개미 투자자들의 실제 이야기]. 기사를 보자. "주식시장은 롤러코스터 장세... 급등락이 반복되는 과정에... 개인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이어 시민 인터뷰. "한 시간에 3, 4번 확인하게 되는 것 같고…", "딸이 많이 손해를 봐서 우울해하고, 회사에도 나가기 싫다고". 일 대신 도박판 증시에 몰두하는 21세기 한국 자화상이 2천 년 전 로마 자화상을 불러낸다. 렘브란트나 고흐가 울고 갈 '도박판 자화상'의 가장 큰 위험성은 무엇인지 로마 사회에서 타산지석으로 들여다본다.
◆영화 '벤허', 숙명의 전차 경주
영화 '벤허'(Ben-Hur).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 작품으로 개봉됐으니 60년도 훌쩍 넘었다. 루 월리스 원작 소설 '벤허:그리스도 이야기'(Ben-Hur: A Tale of the Christ)가 나온 해는 1880년이니 150년 가깝다. 3시간 32분이라는 요즘 개념으로도 긴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탄탄한 구성을 넘어 주인공 유다 벤허로 열연한 찰톤 헤스톤의 명연기도 한몫 거들었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식민 속주 유대 지방으로 시청자를 안내한 영화의 백미는 벤허와 죽마고우 메살라의 목숨을 건 전차경주 아닐까?
◆카이사리아 전차 경주장
로마 관리로 금의환향한 메살라가 벤허의 집을 방문했을 때 기왓장이 떨어지는 사고로 벤허는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스 로마시대 최하층 노예가 담당하던 갤리선 노잡이로 바다에서 고생하다 로마 장교를 구해 자유를 되찾은 벤허. 고향으로 돌아와 메살라와 펼친 전차경주가 사실이었다면 그 장소를 가볼 수 있을까? 있다. 소설과 영화의 무대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카이사리아. 유아 학살의 헤롯왕이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카이사르' 이름을 따 B.C.22년~B.C.20년 만든 카이사리아 전차 경주장에 서면 벤허의 허구가 아련한 전설로 피어오른다. 관중석이 무너지지 않은 온전한 모습의 전차 경주장은 지구상 최대 로마 모자이크 보고(寶庫),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의 3세기 로마 모자이크에 오롯이 남았다.
◆로마 전차경주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보자. 콜로세움에서 남쪽으로 10분여 걸으면 거대한 말굽형 경기장이 나타난다. B.C 6세기 처음 등장한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키르쿠스'는 전차경주장, '막시무스'는 크다는 의미다. 영화 『벤허』의 시대 배경이던 1c 중반 로마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대리석으로 재건축한 데 이어, 2c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증축한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규모가 놀랍다. 길이 600m, 너비 100m. 이 큰 경기장에 관중은 몇 명이나 들어갔을까? 놀라면 안된다. 지금도 지구상에 이보다 큰 경기장은 없으니 말이다. 최소 25만 명.
◆그리스 기원 전차 경주 로마 도입
B.C.680년 25회 올림픽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전차경주는 B.C.509년 로마가 공화국으로 전환한 뒤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공화국 시대 로마에서 전차경주는 국가 행사의 일환으로 치러졌다. 9월의 로마 축제 '루디 로마니'(Ludi Romani), 11월 평민 축제 '루디 플레비'(Ludi Plebeii)'의 핵심 행사였다. 공화국 선출직 공직자인 대통령 격의 집정관(consul), 프라이토르(praetor, 대법원장겸 법무장관), 아이딜리스(aedilis, 국토건설 장관)가 전차경주 실행을 책임졌다. 로마가 공화국에서 황제 왕정국가로 바뀐 B.C.27년 이후에는 황제가 직접 주최하며 시민이 인기를 얻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차경주는 4마리 말이 끄는 콰드리가(Quadriga), 2마리 말이 끄는 비가(Biga) 경기가 있었지만, 종교 행사가 아닌 일반 경기에서는 속도감 있는 콰드리가 경기가 인기였다.
◆전차경주는 프로스포츠
로마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으로 가보자. 2세기 만들어진 한점의 모자이크가 반겨준다. 전차 기수 4명이 각자 말 한필씩 고삐를 잡은 모습에 많은 정보가 담겼다. 4명의 유니폼 색이 다르다. 소속팀이 달랐다는 얘기다. 개인 경주였던 그리스와 달리 로마는 4개의 전문 기업 팍티오(Factio)의 경주였다. 흰색팀(Albata), 붉은 팀(Russata), 푸른 팀(Veneta), 녹색 팀(Prasina).
민간 스포츠 기업 팍티오는 말 조련사, 전차 제작자, 정비공, 조교, 기수(auriga) 고용하고, 마구간과 훈련장을 보유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비용은? 국가가 댔다. 공화국 시대는 당연히 국가 예산, 황제정 시대에도 국가 예산이나 황제 개인 돈으로 치렀다. 경기장을 소유한 국가에서 돈을 대고 민간기업이 실행한 구조였다.
◆경주 스피드 즐기며 도박 열중
이스탄불 히포드롬(전차 경주장)은 타원형 공터만 남아 전차 경주장이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히포드롬 서쪽에 붙은 튀르키예 이슬람 예술박물관으로 들어가 1580년 제작 판화를 봐야 히포드롬의 모습이 명확해진다. 관중석 일부에 스피나(중앙 분리대), 스피나의 오벨리스크도 보인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낙 아몬 대신전에 투트모스 3세가 B.C. 15세기 세운 것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90년 경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왔다. 원래 30m지만, 현재 20m만 남았다. 탐방객이 눈여겨 볼 대목은 오벨리스크를 받치는 기단석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물론 전차 경주 모습, 무엇보다 관람객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뇌물을 쓰거나, 암표를 구했다, 스피드 경주에 몰입하기 위해? 도박에 열중해서다.
◆기록으로 보는 로마 전차경주 도박
황실 구성원부터 귀족, 시민, 노예 가리지 않고 도박에 빠져들었다. 사소한 내기부터 고액 베팅까지 다양했고, 브로커도 기승을 부렸다. 우승팀 맞추기, 1,2,3위 맞추기 등 도박 종류도 다양했다. 승부조작과 비리가 횡행했고, 정부의 도박 금지 조치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 2세기 활동한 로마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풍자시집(Satires)』에서 "시민 전체가 녹색팀에 돈과 감정 걸었다"고 묘사한다. 정곡을 찌르는 경구로 이름 높던 1세기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도 '경구집'(Epigrammata)에서 "그대가 보는 전차가 달리는가? 당신 말, 당신 승리의 야자수이다!"라고 꼬집는다. '그대가 보는 전차=돈을 건 팀', '승리의 야자수=돈 따는 것'이다.
카르타고 태생으로 2~3세기 활약한 초기 기독교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로마의 대형 스펙터클(전차경주, 검투경기, 연극)을 다룬 『경기에 대하여(De Spectaculis)』에서 전차경주 도박을 통렬하게 비난하며 "영혼을 잃는 오락"이라고 개탄한다.
◆주식 도박판, 민주공화정 위기로
시민들이 전차경주 도박판에 빠질 때 위험성은 단순히 돈을 잃는 차원을 넘는다.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집'(Satires)을 펴보자. "한때는 제국의 권력과 집정관의 홀이며, 군단의 명령권까지 손에 쥐었던 그들이 이제는 스스로 만족하며 오직 두 가지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빵과 전차경주". 공화국 시절 주권자로서 위상을 까맣게 잊은 채, 정부에서 제공하는 빵(무상 급식)과 전차경주(도박)만 쳐다보는 세태를 고발한다. 튀르키예 니케아 출신으로 집정관까지 지냈던 2, 3세기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Roman History)』 서술은 더 섬뜩하다. "시민이 자신의 생명, 제국의 안전보다 녹색 팀 승리에 더 마음 쏟는다". 경주 도박판 속에 공화정치는 빛바랜 개살구가 되고 황제 독재가 공고화된다는 의미다. 주식 도박장 아우성 속에 합리적인 법치와 세제, 국방정책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는 '대한민국 자화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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