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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하윤탁 헌책방 '북셀러' 대표…"책을 발견하는 즐거움 주는 공간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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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년이 전하는 헌책의 가치

하윤탁 대표는
하윤탁 대표는 "'북셀러'가 싼 책을 여러 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 여기서 이걸 사다니!' 하면서 정말 소중한 책 한 권을 발견해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대구 중구 방천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난 골목 입구에 'USED BOOK SHOP'이라고 적힌 초록색 차양이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엔 '치킨은 순간이지만 책은 영원하다'란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었다. 내부엔 누군가의 손때 묻은 책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헌책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책방 곳곳엔 책과 관련해 책방지기가 쓴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다. 낡은 선풍기와 타자기, 전축 같은 소품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헌책방 '북셀러'의 모습이다.

지난 2022년 문을 연 이곳은 헌책을 파는 26㎡(8평) 규모의 작은 책방이다. 책방 주인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헌책을 선별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어떤 책을 꺼내들지 고민하는 이들에겐 책방지기가 취향에 맞는 책을 친절하게 추천해주기도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가끔씩 연예인도 찾는다.

책방지기는 하윤탁(33) 씨다. 그는 '호재'란 필명으로 월간 '대구문화'에 '그 도시의 서점'이란 제목의 서점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호재라는 필명은 문학의 좋은 재료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서점을 열기 전부터 써온 필명이지만 지금의 모습과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대구 중구 방천시장에 있는 헌책방
대구 중구 방천시장에 있는 헌책방 '북셀러' 전경. 김도훈 기자

-책방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막연하게나마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면 신혼여행 때인 2018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란 서점을 방문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이곳은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성지' 같은 느낌의 유명 독립서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이 얘기를 하려니 그날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다.

그곳에서 영국 출판사 평귄북스의 '위대한 개츠비'란 책을 샀다. 세계적인 출판사의 고전문학 시리즈인데다 작품도 워낙 유명하다보니 상당히 흔한 책이다. 하지만 그 책은 지금까지도 제가 첫 손가락으로 꼽는 소중한 책이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책을 보며 '어떤 책을 사느냐도 중요한데 어디서 책을 사는지도 중요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방문하기까지의 여정이나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 등 모든 걸 좀 품고 추억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책방을 열었다. 2022년 5월의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수많은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불안하진 않았나.

▶그런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사업적으로 '잘 될까'하는 고민보다는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을까'하는 가치를 좀 더 높게 봤던 것 같다.

그런 선택에 만족한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문을 열었을 때처럼 서점에 나오는 일이 무척 즐겁다. 손님이 있건 없건 하루 종일 이 공간에서 뭔가를 하게 된다. 책을 정리한다든지 자리를 배치를 바꾼다든지 끊임없이 먼지를 일으키게 되더라. 그러다 보면 이런 노력들이 어떤 상황과 맞아 떨어져서 갑자기 큰 바람이 돼서 돌아오기도 한다.

책방 곳곳엔 책과 관련해 책방지기가 쓴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다. 김도훈 기자
책방 곳곳엔 책과 관련해 책방지기가 쓴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다. 김도훈 기자

-헌책을 기반으로 한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국문과 출신이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빈 캐리어 2개를 들고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방문해 각각 100만원어치의 책을 사서 오실 정도로 책을 좋아하셨다. 방 하나에 책 밖에 없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어릴 때부터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대부분 헌책이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읽기엔 좀 수준 높은 책이었지만 그 책을 보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친구들과는 조금은 달랐다. 누군가로부터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거나 광고를 보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만의 기준을 세워 새로운 책을 계속 찾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떤 책을 읽은 뒤 그 책에 영향을 준 과거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식이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서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제 새 책을 접하는 경우보다 헌책을 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떤 책이 있을지 모르고 찾은 헌책방에서, 뜻밖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도 컸다.

서점을 열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서점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다. 새로 생겨나는 '젊은 서점'이 갖추고 있는 공통된 틀에, 저를 완전히 맞출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뭔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 답이 헌책에서 찾았다. 지금껏 느꼈던 헌책과 헌책방의 매력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윤탁 대표가
하윤탁 대표가 '북셀러'의 독특한 판매방식인 '블라인드 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블라인드 북'이란 이름의 판매방식으로 유명하다.

▶초판 시집 중에서도 좀 가치가 있는 것들만 따로 뽑아 누구의 책인지 알 수 없게 봉투에 넣고, 손 글씨로 쓴 책 속 문장과 함께 진열해 판매했다.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봐주셨다. 책방 문을 열고 6개월쯤 지났을 무렵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에 참여하게 되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다. 오로지 뇌리에 꽂힌 문장 한 구절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쉽게도 지금은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절판된 책의 초판본이면서 제 기준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이어야 하다 보니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최근엔 '블라인드 엔틱 북'이란 이름으로 판매방식을 바꿨다. 1960~1980년대에 나온 책 중에서 문학적 가치나 번역적 가치, 미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한 책을 블라인드 북 형식으로 판매한다. 지금은 그렇게 뽑은 외국 시선집을 판매하고 있다.

책 포장 꾸러미 안에 음악 QR코드를 넣어뒀다.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제가 선택해놓은 음악이 나온다. 쓸모를 다한 책을 오려서 만든 작은 노트, 자그마한 밀납에 심지를 붙인 소형 캔들, 연필 등도 함께 담았다. 블라인드 북 형식으로 옛 책 한 권을 사는 것을 넘어, 저희 서점을 방문해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함께 전달하고 싶었다.

하윤탁 대표는
하윤탁 대표는 "'북셀러'가 싼 책을 여러 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 여기서 이걸 사다니!' 하면서 정말 소중한 책 한 권을 발견해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서점이란 공간이 오래 생존하기 위해선 책 판매가 뒷받침돼야 한다. 헌책의 수요는 어떤가.

▶흔히들 헌책방이 사라졌다고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전 헌책방이 사라진 게 아니라 디지털 전환이 가장 빠르게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책을 오프라인에서 팔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거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를 하면 인건비도 안 들고, 창고 하나 빌리면 되니 월세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거래는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저희도 온라인 판매를 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겸하는 헌책방은 온라인 매출이 훨씬 높기 마련인데, 저희 같은 경우는 오프라인 매출이 좀 더 높은 편이다. 오프라인 공간에 애정이 큰 만큼 서점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어떤 서점을 꿈꾸나.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값싼 책을 여러 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 여기서 이걸 사다니!' 하면서 정말 소중한 책 한 권을 발견해 즐겁게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각자에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 한 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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