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생일이 다가오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 하나 사서 가족끼리 조촐하게 축하해야지. 나름의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어머님~ 생일파티 준비물 안내드려요." 잠시 뒤에는 아이와 생일이 일주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생일사진 예약했어? 인기 있는 곳은 벌써 마감됐던데."
돌잔치도 아닌데 생일 준비를 이렇게까지 한다고? 요즘 부모들에게 아이의 생일은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끝나는 하루가 아니다.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나눠줄 '구디백'을 고르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생일상을 꾸민다. 매년 새로운 콘셉트의 사진관을 찾아 성장하는 모습도 기록한다. 돌잔치는 한 번으로 끝났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을 '우리 아이만의 특별한 하루'로 남겨주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생일인데 선물을 돌린다고? '구디백' 고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생일을 맞은 원아를 위한 작은 파티가 열린다. 운영 방식은 제각각이다. 한 달에 한 번 그달의 생일자를 모아 축하하기도 하고, 생일 당일 주인공을 위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곳에는 어른들의 생일파티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도 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오히려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을 돌리는 '구디백'이다.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해줘서 고마워'라는 의미를 담은 일종의 답례품이다.
구디백에 무엇을 넣을지는 부모들의 또 다른 숙제다. 어린이집에서 가격대를 정해주는 곳도 있지만 부모가 자유롭게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맘카페와 SNS에는 "어린이집 구디백 뭐가 좋을까요", "친구들이 좋아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답례품을 추천해달라"는 글이 잇따른다.
구성도 다양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젤리 같은 간식부터 작은 장난감, 스티커, 색연필 등이 단골 품목이다. 칫솔·치약이나 식판 등 실용적인 생활용품을 고르는 부모도 있다. 직접 봉투와 간식, 장난감을 구입해 하나씩 소분해 포장하는가 하면 아이의 이름과 생일을 새긴 스티커까지 붙여 완제품으로 만들어주는 전문 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케이크도 '우리 아이 취향'대로
어린이집 생일파티를 마쳤다고 생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두 번째 생일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가랜드와 풍선으로 벽면을 꾸미는 것은 기본이다. 아이의 지난 1년 사진을 모아 대형 포스터로 제작해 생일상 뒤편에 걸기도 한다. 아이가 쓰는 고깔모자도 케이크 가게에서 받은 종이 모자 대신 이름이나 숫자를 새긴 패브릭 제품을 따로 준비한다.
최근에는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에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매달아두는 이벤트도 눈에 띈다. 생일 아침 아이가 방문을 열면 좋아하는 인형들이 풍선에 매달린 채 기다리고 있는 식이다.
케이크도 달라졌다. 레터링이나 사진, 캐릭터를 넣은 주문 제작 케이크도 인기지만, 아무 장식이 없는 흰 케이크를 사서 부모가 직접 꾸미기도 한다. 값비싼 주문 케이크 대신 아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을 케이크 위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이신영 씨(35)도 아이의 생일을 앞두고 직접 케이크 만들기에 나섰다.
타요와 중장비 등 자동차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였다. 이 씨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자동차 케이크를 알아봤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며 "과자를 부숴 흙처럼 만들고 '석기시대' 초콜릿으로 돌을 표현했다. 그 위에 깨끗하게 씻고 소독한 자동차 장난감을 올리니 아이에게 딱 맞는 케이크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돌사진 한 번에서 '매년 한 장'으로
생일날 무엇을 먹고 어떻게 꾸몄는지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백일과 돌처럼 특정 시기에만 사진관을 찾던 것에서 벗어나 두 돌, 세 돌, 네 돌 등 매년 생일마다 사진을 찍으며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는 부모들이 생겨나고 있다.
6살 딸을 키우는 송지안 씨도 매년 딸의 생일을 사진으로 남긴다. 해마다 다른 분위기의 사진관과 콘셉트를 찾아보는 것까지 생일 준비의 일부가 됐다.
송 씨는 "예전 우리가 클 때는 사진관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였는데 지금은 셀프사진관 등도 많아져 사진을 남기기가 훨씬 쉬워진 것 같다"며 "매년 다른 콘셉트의 사진관에서 딸의 모습을 남겨주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말했다.
수요가 늘면서 사진관들도 '생일'을 하나의 촬영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숫자 풍선과 생일 왕관부터 'Happy Birthday to Me'가 적힌 레터링 티셔츠까지 소품도 다양하다. 꽃이나 자연을 활용한 감성적인 배경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활용한 공간까지 콘셉트도 세분화됐다.
촬영 방식 역시 아이의 특성에 맞게 달라지고 있다. 움직임이 많은 아이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카메라를 바라보게 하기보다 노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담는다. 풍선을 들고 뛰어다니거나 좋아하는 장난감을 품에 안고 웃는 순간, 부모에게 달려가 안기는 모습 자체가 생일사진이 된다.
실제로 색다른 생일사진을 찾는 부모들의 수요는 예약 속도에서도 드러난다. 대구·경산에서 몬탁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주연 씨는 최근 해외에서 유행하는 감성적인 파티에서 착안해 새로운 생일 촬영 콘셉트를 선보였다. 전형적인 생일사진 대신 패브릭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공간을 만들고, 대형 케이크 등 주요 소품도 직접 제작했다.
이 씨는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를 보다가 해외에서 먼저 유행하고 있는 감성적인 파티 콘셉트를 접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분위기를 쉽게 볼 수 없어 '내가 먼저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가랜드를 활용한 촬영은 많지만 우리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소품도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첫 달부터 준비한 촬영 일정이 모두 찼고, 입소문이 난 뒤에는 예약을 연 지 1~2시간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 현재는 촬영 가능한 날짜를 늘렸지만 대부분 3~5일 안에 예약이 모두 찬다.
이 씨는 이런 인기의 배경으로 사진을 일상적으로 기록하는 문화의 확산을 꼽았다. 그는 "셀프·대여 스튜디오가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사진관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고, SNS에 일상을 기록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사진 촬영 자체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 것 같다"며 "한번 촬영한 분들의 재방문율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이어 "셀프 촬영을 주로 운영하면서도 생각보다 작가 촬영을 원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생일 촬영 콘셉트를 꾸준히 만들어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돌잔치는 한 번이지만 아이의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거창한 잔치를 반복하는 대신 작은 선물 하나,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 하나, 그해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으로 지금의 아이를 남긴다. 요즘 부모들에게 생일 준비는 단순히 하루를 화려하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아이의 '한 해'을 기록하는 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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