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근처에 들어선 새 아파트 견본주택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네모꼴 곽 휴지 하나 받으려면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에 이내 발길을 돌렸다.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는 부동산 아주머니들의 손길에서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실감 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어느새 물러간 것처럼 '미분양의 무덤' 대구 부동산 시장에도 시나브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이달 대구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11개월 만에 기준선을 회복했다. 거래량 역시 조금씩 늘어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훈풍이 대구 전역에 부는 것은 아니다. 준공 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아파트에만 온기가 퍼지는 중이다. 한여름 내내 외쳤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가 아니라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다. 비단 대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느 부동산 분석업체가 올해 1~7월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을 파악했더니 입주 1~5년 차 단지는 0.41%, 6~10년 차 단지는 0.31% 오른 반면 10년 초과 단지는 0.13% 상승에 그쳤다. 이는 몇 년 전과 정반대 양상이라 낯설다. 저렴한 구축(舊築) 대신 비싼 신축만 찾는 트렌드를 두고선 해석이 다양하게 나온다. 우선 다주택자 규제 여파로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똘똘한 한 채'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고급 아파트는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지적한 '과시적 소비'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3040세대의 가치관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콘크리트 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최신 설계에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에만 이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거 기준치 자체가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신축 아파트 투자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하려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적어도 뒤처지진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초로(初老)의 어리석은 고백이다. 아뿔싸! 필부필부(匹夫匹婦)가 트렌드를 이끌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면 남들 따라갈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 눈높이가 달라졌음을 모르는 척 허구한 날 정쟁(政爭)만 일삼는 우리 정치권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隨伴)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떠밀려서 변화와 개혁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여태까지 그래 왔다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安住)했다가는 인기 없는 구축 아파트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분명하다. 소설가 한강에 훨씬 앞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남긴 어록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To improve is to change, so to be perfect is to change often."(나아지려면 달라져야 한다.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화해야 한다) 곧 썩어 버릴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겠다.
2024-10-15 18:00:20
말 많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필리핀 이모' 2명이 숙소를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단다. 이들은 사업주의 '이탈 신고' 뒤에도 소재(所在)가 확인되지 않고, 당국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잠적한 이유로는 현실적 처우(處遇)가 우선 꼽힌다. 숙소비, 세금 등을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24일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급여 수준과 지급 방식에는 불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업 효과, 비용 적정성 등 이 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은 차치(且置)해 두자. 지난달 입국 당시 그들의 표정이 기대로 가득 찼던 걸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 주변에서 부러워한다는 자랑과 함께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들이 선하다. 그러나 필리핀 이모들의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은 물거품이 될 위기다. 시범 사업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꿈속에서나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미국 코미디언 고(故) 조지 칼린의 독설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괜스레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된 것은 60여 년 전 광부·간호사로 독일에 갔던 우리 청춘들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 협약 사업, 타향으로 떠난 목표가 경제적 자유란 점 역시 닮았다. 인구 감소로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당시 서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인 배경은 지금의 한국처럼 노동력 확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구가 급감한 데다 동서 분단 탓에 옛 동독에서 일손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한국과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독일의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졌다. 1963년 '한국 광부 파견에 관한 한-독 협정서'가 체결된 이래 1977년까지 약 2만 명이 광부, 간호사로 현지에서 일했다. 유럽에 뿌리내린 첫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였다. 그들의 고된 노동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됐다. 딱 60년 전인 1964년 독일에서 이들을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꽤 인상적이다. "여러분, 나는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섣부른 걱정을 하자면 이번 해프닝이 급속한 고령화, 극단적인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검토되던 이민(移民) 문호 확대 논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는 편견 또한 심화시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선진국 대부분이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찾은 100만 명의 외노자들이 낡은 이민 장벽에 막혀 경쟁국으로 떠난다면 우리만 손해다. 세케 에르난데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같은 이들은 이민자 모시기 경쟁이 불붙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만약 그들 중에 제2의 일론 머스크, 젠슨 황이 있다면 진짜 큰일이다.
2024-09-24 17: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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