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군 출신으로 임진왜란때 해전의 명장 이순신장군의 부하였던 금완장군에대해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김완장군은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의 작전참모격으로 보좌하여 여러번 큰공을세우다 정유재란후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다가 2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 고국에 돌아오자 선조대왕이 해동의 소무라고 칭찬하고 특별히함안군수로 임명했던 인물이다.
영천군 자양댐 아래에는 김완장군과 당시의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동린각이 있고 매년 4월초순경 지역유림 대표들과 후손들이 모여 향사를 올리고 있다.
김완장군의 11대 후손으로 대구시수성구지산동에서 살고있는 김석진씨(59)는향사를 치를때 참석한 젊은 층들은 김완 장군이 어떠한 인물이며 왜 제사를지내게 됐는지를 잘모르고 있어 관계문헌들을 찾아 나름대로 후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동소무 김완장군 충효사상과 임신왜난}이란 제목의 간략한자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이순신장군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그 부하인 김완장군등의활약상에 대한 연구는 이충무공의 그늘에 가려 별로 없고 국사편찬위원회가펴낸 책에도 소개되지않아 후손된 입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김씨는 김완장군의 연구를 위해{영양사난창의녹}{군수 금공가전}{해소실기}등의 옛문헌과 일본의 서적등을 수집했다면서 앞으로 보다 깊이있는 연구를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씨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김완장군은 신라경순왕의 후예로서 41세에 무과에합격, 임진왜란 발발 1년전에 전라좌수영 5개기지중 하나인 사도(전남고흥군점암면금사리}의 첨사에 임명됐다가 임진왜란때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밑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절충장군으로 승진했다.
김완장군은 도서농민의 권농에도 나서 군량미와 어염 조달에도 큰공을 세워조방장으로 승진하기도 했고 한산도 제승당에서 이충무공을 보좌, 군사기밀등을 관장하기도 했다.
김완장군은 정유재란때 거제도 북서쪽 칠천량전투에서 왼쪽다리에 총탄을 맞고 일본의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2년만에 탈출했으며 조정에서는1등공신으로 책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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