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춤추는 숲99

그랬다. 다만 다만, 어젯밤 바로 눈앞의 저 마루바닥에서 의혜의 브래지어가뜯기고, 치마가 벗겨지는 것만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도 아니었다. 수성못에서 그때 그녀와 진정 입맞춤이라도 했더라면, 허록의 행위를 눈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그녀의 속옷 안으로 손이라도 한번 집어 넣어보았으면 이렇듯 원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녀의 뽀얀 허벅지 살결로-단지 무릎팍에서 10센티위쪽까지만이라도-시선이 닿은 사실이 있었더라면, 허록이 한 치마벗긴일 따위조차 용서했을 것이다!목젖을 누르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엎드려 울었다. 눈코물이 마루바닥에 흘렀다. 도무지 억제할 수가 없었다. 흥건한 마루장을 앞니로 마구 갉았다.쥐처럼 마루장을 갉던 앞니에 이쑤시개만큼 나무조각이 배어 물렸다. 동유는엎드린 채로 질정질정 씹었다. 눈물이 흥건한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쥐처럼 튀어나오지 않은 앞니로 바닥을 갉다 보니 콧등이 심하게 눌려 코피를쏟은 것이었다.

그것은 살의(살의)인지도 몰랐다. 살의를 일으키기 위한 자학의 과정이 더맞을 것이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배움을 준 사람에 대한 두려운 역살의 다짐인지도.

언제부터인가 울음이 그쳐져있었다. 안타깝고 원통함이 살의로 바뀌는 순간,울음이 그쳐버린 것이었다. 술을 사왔다. 독주였지만 밑둥치를 깨버리면 날카롭게 날이 서서 흉기로 변신하는 맥주병도 두어병 끼어넣었다.술을 마셨다. 못하는 술이지만 취하지를 않았다.

마치 커피라도 마시는 양 알콜이 핏줄에 흐를 수록 머리 속이 말짱해왔다.잠이 든 모양이었다. 새벽녘까지 술을 마신 기억이 있는데, 아침인 듯 싶었다. 머리가 깨어질듯이 아파왔지만 속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살의(살의)는그대로였다. 우울과 안타까움에는 기댈 수 없는, 살의만이 그를 평탄케하는마음의 풍경도 그대로였다. 주변엔 전날처럼 의자와 기물들이 뒤집히고 넘어져 있었는데, 발치에 인기척을 느낄수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장승처럼 표정없이 서있는 허록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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