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인장이야기(32)

혜수가 날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뻔하게 우울한 이 가족사를 언제까지나 줏어삼키고 있을 뻔 하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가가 시큰거리고 있었나 보다. 이번에는 혜수가 오히려 날 걱정해 주었다. 혜수는 평상시와 전혀 다른옷차림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단둘이만 방에 남게 되자 금세 외출준비를 하였던 모양이었다. 언제 그런 옷을 마련했나 의아할 정도였다. 소매가 없이 목부분을 중국옷처럼 만든 흰 원피스 위에 속이 비쳐 보이는 덧옷을 입은 모습이 그녀의 나이를 제대로 보게 만들고 있었다.가느다란 끈 위에 마름모꼴로 은세공한 알을 매단 목걸이까지 걸고 있어아주 우아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차림이었다."어디 갈려구? 오후에 공연 없어?"

나는 대답을 크게 기대하지 않고 무심하게 습관적으로 물었다. 뒤죽박죽된생각들 속을 헤매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 혜수는 스스로알아서 하겠지 하는 기분이었다.

"응, 그냥 이렇게 꾸미고 나서면 기분이 좀 달라질까 해서 그래. 마음을 빛쪽으로 어떻게든 좀 끌고 나가서 밝은 곳에 펼쳐 놓아야겠어. 항상 칙칙하고어두운 곳에서 헤매는 마음이 안됐어. 곰팡이내가 나고 썩어가게 내버려 둘수는 없잖아"

나는 대답을 잃었다. 혜수는 마음이 좀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말을 그렇게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누구도 혜수와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생각이미쳤다. 처음에는 혜수가 그냥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라고 생각했으나이젠 혜수는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어떤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만큼은 조금씩이라도 의식적으로 차츰 말수를 늘리려고 애쓴다는느낌도 들었다. "언니, 언니도 날 도와 줘. 난 어떻게든 이곳에 들어맞게 살고 싶어. 근데 잘 안돼. 연극을 하는 것만으론 부족해. 언니는 내가 얼마나애쓰고 있는지 모를거야. 게다가 난, 말이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감정을 갖게 된거 같아. 왜, 언니도 봤잖아? 전에 그 까페에 왔던 사람, 난그 사람이 아니면 안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