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이 되자 갑자기 바빠져 나는 혜수의 일도 잠시 잊게 되었다. 나의 팔월은 두번의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몇몇 여교사들과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뒤 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가족들과 양산 통도사와 부산의 바닷가를 찾았던 것이다.집안에서 미적거리며 방학을 보내기 일쑤이던 내가,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하겠다고 나서자 가족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한결같이 반가워 했다. 어머니는 내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울적해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행을 하겠다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셨다.
미혼여성들끼리의 여행이라는데 부담을 느낀 우리는 처음계획과는 달리모 일간지에서 {동남아 문화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모은 여행단에 자연스럽게끼게 되었다. 홍콩, 마카오,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을 칠박 팔일동안 패키지로 여행하면서 나는 지도를 펼쳐 들고 자주 어이없어 했다. 짧은 일정동안 동남아시아를 다 돌아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고서 동남아 여행을 하고 있다고생각하면 웃음부터 났다.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태국을 제외하고는 말레이시아조차도 싱가폴로 가기 위해 슬쩍 스쳐 지났을 뿐이고 보니 사실은 동남아를여행한다는 건 허울에 불과했다.게다가 문화기행이라는 기획의도는 어디 갔는지 실제로 우리가 여행한 곳은 문화유적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기대만큼 새로운 풍물을 접할 수 있는 여행이되지는 못했지만나는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학교의 수학여행을 제외하곤 어딘가로 가 본 기억이 거의없는 나로서는설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여행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낯선 곳을 경험하면서 잠시 집을 떠나 있는 기분을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실제로 나는 단 한번을 제외하곤 집안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한번의예외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어났는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드러내놓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늘 혜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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