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숱한 화제뿌린 비연의 퍼스트레이디

{금세기에 가장 미국적인 여인} {최고의 교양있는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미국 역사상 가장 비운의 여인} {파란의 생애에서도 제 정신을 차리고 살다간여인}.20일 오전 11시15분(한국시간) 임파선 암으로 타계한 재클린 부비에르 케네디 오나시스여사를 보내는 미국인들의 그녀에 대한 평가이다.31세에 퍼스트 레이디가 돼 34세에 남편을 잃고 여덟 남자와 재혼, 동거, 밀애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지구촌 모든 여성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여인.그녀는 지난 1929년 7월28일 뉴욕주의 노스 햄프턴에서 증권브로커인 존 버너스 부비에르와 자네트 리 부비에르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으나 8세때 부모가 이혼, 다소 혼란스런 어린시절을 보냈다.

1951년 워싱턴 DC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졸업하던그해 한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던중 취재 대상이었던 당시 매사추세츠주출신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와 만나 2년여동안의 열애 끝에 53년 9월 로드아일랜드주의 뉴포트에서 1천7백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한다.4년만에 이번에 임종을 지킨 첫 딸 캐롤라인을 낳았고 60년도에 퍼스트레이디가 된후 아들 존 F 케네디 2세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비운은 63년 남편의 피살과 함께 시작된다.

물론 그녀의 백악관 생활도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것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남편의 바람기때문이었다.

케네디 연구가인 조지 카포지가 지난2월 {인콰이어러}라는 주간지에 폭로한내용은 당시 그녀의 고민과 결코 남자에게 끌려다니지 만은 않는다는 고집과{남자없이는 하루도 못산다}는 그녀의 인간됨을 알수있다. 카포지는 재클린여사가 케네디대통령 재임 35개월동안 다른 3명의 남자와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상대남자는 남편의 국방담당 보좌관이었던 로스웰 질패트릭,두번째 남편이 된 오나시스와, 마지막 연인이었던 템플스만등이 포함된다는것이다.

그녀의 이같은 외도는 바로 남편이 당대의 여걸 마릴린 먼로등 숱한 여인들과 놀아나는등 문란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반발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녀는 케네디대통령이 죽은지 5년만인 68년에 오나시스와 재혼, 아직도 미국민들은 당시의 충격과 서운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7년뒤인 55년 오나시스마저 사별하자 그녀는 상속은 못받았지만 2억3천만달러를 챙겨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그녀를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았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녀가 68년6월 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상원의원마저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된 4개월뒤 돈에 팔려 오나시스와 전격 결혼한데 대한 분노를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88년부터 동갑내기 유부남인 유태인 보석상 모리스 템플스만과 동거해온 그녀는 템플스만이 부인과 갈라서는 대로 정식 결혼할 계획이었으나 위궤양에이어 지난해 암을 선고받자 맨해튼 5번가 아들집에서 외로운 투병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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