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인장이야기(44)

우리 가족이 깊고 단 잠에서 다 깨어났을 때, 우리를 보고 민박집 주인 할머니가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무슨 힘든 일들이라도 치르고 온 게지]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계면쩍게 웃었다. 정말 그랬을지도? 지금까지의 우리집 식구들은 각자 베돌며 힘들게 지금껏 억지 삶을 살아들 왔는지 모르겠다는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민박집의 마당에찬물을 받아 담가 두었던 수박부터 나눠 먹었다. 우물물이나 펌프 같은 게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만큼 시원하지도 달지도 않은 수박을 먹으며 미수가 말했다.

수박을 먹고 났을 때에야 우리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를 모시고절을 찾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평소 같으면 우상 숭배라고 절 쪽으로는돌아보지도 않던 어머니가 절을 찾은 사실에 우리는 화들짝 놀랐지만 어머니의 설명에 고개들을 주억거렸다.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께서 젊었던 시절고시공부를 위해 한때 통도사에 머무신 적이 있다는 얘기였다.아버지께서 고시공부를? 우리는 듣는바 처음인 그 이야기에 한결같이 의문표를 달았다. 우리의 기억에 살아 있는 아버지는 병석에 누우신 모습이 전부였기에 그런 풍운의 뜻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십년넘은 세월에 어머니께서 드러내 놓고 아버지를 추억하시는 일도 처음이었다.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까맣게 잊었다는 게 갑자기 어머니께 죄송스러워 젊은 시절의 두분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묻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도 모처럼 아버지를 추억하시는 게 싫지 않으셨던지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부채처럼 펼쳐 놓으셨다.

우리 다섯 식구는 서로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저물녘에야절에 올라갔다. 서늘하다 못해 추운 감마저 도는 산기운을 느끼며 앞서거니뒤서거니 절까지 걸어오르는 동안은 혜수도 한껏 밝은 표정이었다. 동요도부르고 하며 우리는 사이좋게 산길을 걸었다. 우리를 사람들이 간혹 의아한표정으로 힐끗거렸다. 그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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