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60년만에 귀향 위안부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 못난 불효여식 죽지않고 살아와 큰절올립니다. 왜 불러도대답이 없으신지요"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 일제의 만행에대한 보상도 받지 못한채 중국 안휘성태화현 강교촌에서 한맺힌 나날을 보내다가 60년만에 고향을 찾은 정학선씨(69)가 15일 오후 경주군 감포읍 전촌리 뒷산 {옥수봉} 부모묘소를 찾아 통곡했다.

정씨의 성묘에는 고향을 지켜온 4촌오빠 정연홍씨(71)와 친정올케 강용순씨(67.부산시 서대신동)등 친척들이 안내했는데 "살아서 헤어진 아버지를 돌아가신후에나마 만나게 돼 이젠 죽어도 한이없다"고 했다.

그는 9세때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간후 생활에 쫓겨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14세때인 1939년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중국 이곳저곳을 끌려다니며 일본군인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했다.

처음 하얼빈의 일본군부대에 배치됐을때 견디다 못해 일본군의 얼굴과 팔등닥치는대로 물어뜯었으며 저항하다 옷을 벗긴후 사지를 형틀 같은 곳에 묶여수십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회상했다.

일본군들에 끌려 산동성조장에 배치됐을때인 40년쯤 극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뒤따라온 일본군이 쏜 총에 다리를 맞고 쓰러지면서 생포되기도 했다.다시 위안부생활에 들어간 그는 그후 탈출에 일단 성공했으나 도주로에서 중국 국민당 군벌 염석산부대를 만나 간호원생활을 시작했다.그후 국민당과 공산당군대에 번갈아 수용됐던 정씨는 49년 중화인민공화국수립과 함께 안휘성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중국 남자를 만나 두차례 결혼했으나 아기를 못낳는다는 이유로 쫓겨난후 중국벽지에서 농삿일을 하면서 어렵게 지내왔다고 한다.중국 남경대 유학생 박선영씨(29.박사과정) 소개로 알게된 서울상도성결교회김원동장로(50)와 교회신도들의 주선으로 고국방문이 이루어진 것.유학생 박씨는 지난해 11월중순 남경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금릉시보}에서외롭게 살고 있는 조선인 정씨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강묘촌에서 국가가 빌려준행정사무소의 창고에서 기거하고 있는 정씨를 찾아냈던 것이다.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눈물로 돌아온 그는 유년기를 고향에서 보냈지만 우리말을 모두 잊어버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4남매중 외동딸인 정씨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지만 고향에서 죽고싶다"며 짧은 일정을 못내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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