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민정부, 대북공식입장 머뭇

김일성 조문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국내정국이 혼미해졌다.젊은이들이 빈소를 차려놓고 친북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무더기 검거되기도했고 야당인사들은 물론 일부 여당 사람들 조차도 김영삼정부가 어서 공식입장을 밝히라고 대들자 이영덕 총리가 뒤늦게 한마디 했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김일성은 민족분단의 고착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비롯한 사건들의 책임자라는 역사적 평가가 이미 내려져 있다]는 공식입장이 나오기까지 열흘이나 걸렸다.

사정이야 어쨌든간에 북한은 장례날짜를 이틀씩이나 연기하면서 그것이 마치남쪽 조문객을 위한 배려인 것 같은 냄새도 피웠다. 그러는 동안 수십명 운동권 젊은이들이 줄줄이 붙들려 갔다.

사태가 이쯤되면 외국인들 눈에 한반도의 사태가 어떻게 비춰질까.지난 15일자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조문객 초청으로 남한이 곤경에 처해 있다고 보도하고 방북조문객을 구속하는 경우 한국이 괜스레 오해를 살 수도 있어 한국정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대한 수령}은 죽어서도 남한을 괴롭힌다는 말을 듣는다.소모적인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조문논쟁으로 정국이 시끌시끌해지고 김일성과 북한정권에 대한 공식입장을 당장 속시원하게 못 밝힌채 우물쭈물한 문민정부가 잠시나마 답답해보였기 때문이다.

왜 우리정부가 꾸물거렸는가.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한 김대통령이 김일성에대한 평가를 유보한채 회담이 무산된 것에 대해서만 [아쉽다]고 한마디 한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이나 무라야마 일본총리가 조의를 표시한 것과 같은 그런 문구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뜻을 전달했어야 옳았다는 말이다.

만나기로한 사람이요 이미 {주석}이라는 직함까지 달아 국가원수로 대접해온인물이 죽었는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말을 듣는다.

평가는 평가대로 하고 협상상대라는 형식에 걸맞은 외교적 언사를 한마디쯤해두었더라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관용은 강자만이 베풀수 있는 미덕이다. 더욱이 지금 시대정신이 개방과 화해로 수천년 묵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로 물든 비극의 역사조차도 막을 내렸다.

조문시비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독일군대가 파리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를 누비면서 시민의 박수갈채를 받은 것이다.

혁명기념일인 7월14일 대행진에 독일군장병 2백명이 초대되었다. 2차대전때4년간 나치 독일군 점령하에서 고생한 프랑스인들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과거백년동안 세번이나 독일과 크게 싸운 오랜 적대관계로 미뤄볼때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직 대통령이 펄쩍뛰고 재향군인회와 공산당은 물론 일부각료조차 반대한 일을 미테랑 대통령이 [과거에 얽매인다면 어떻게 미래를개척한단 말인가]고 용단을 내렸다.

한반도가 과거라는 족쇄에서 풀릴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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