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4분33초의 침묵

도심에서의 탈출이라고 옮겨앉은 시지동 들판인들 아파트 개발의 뻘건 불도저 손아귀에서 무사할 리 없다. 이제 더이상 무논의 개구리 소리도 들을 수없고 키 큰 개망초 꽃무리의 여린 살내음도 맡을 수 없다. 베란다 끝에 매달아 들판의 바람결에 간간이 귀를 씻어주던 풍경소리도 불도저의 굉음에 묻혀버리고, 그래서 차라리 풍경조차 내려놓은 상태다. 이쯤되면 모든 소리에 무방비 상태다. 똑같은 음색으로 반복되는 생선장수의 확성기 소리, 자동차 클랙슨 소리, 세탁기 모터소리 등 수많은 금속성 소리로부터 맥박이 뛰는 소리까지 아무리 씩씩한 삶의 소리들인들 듣고 있자면 고문이다.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의 작품 중에는 {4분 33초}라는 제목의 피아노곡이 있다. 분명 피아노곡이지만 피아니스트는 4분33초동안 피아노 앞에 그냥 앉아있다 일어나도록 한 것이 전부다. 그는 음악의 {음}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다.톱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등 일상음들이 현대음악의 한 요소로 삽입되고있는 것은 잘 알려진 터이지만, 피아노가 소리내기를 멈춘 시간을 음악으로서체험하게 했던 그의 실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분명 모든 소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침묵이다. 케이지는 거대한 침묵의 한조각을 4분 33초만큼만 떠올려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음악의 소리를 기대했던 청중들의 몸움직임과 기침소리등의 소음으로 그야말로{소리있는 침묵}의 음악이 만들어졌던 것이고 작곡가는 그것까지 계산에 넣었던 것. 케이지의 계산이야 어쨌든, 모든 소리의 끝에서 건져올려지는 음악의 아스라한 곡예와 함께 오늘은 온갖 금속성 소리속에 들어 앉아서 잠시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언제나 말갛게 들여다 본다는 관세음보살도 실은 우리안에 있는 정신의 가능성을 인격화한 것에 다름아니다.그러니 4분33초 동안이라도 보다 완벽한 침묵을 들여다 보는 일은 이 여름 우리 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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