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잉크의 시간-11정말 한심한 언니였다. 어떻게 같단 말인가. 그 고양이와 이 키티가. 그리고큰오빠는 이렇게 말했었지. 계집앤 할 수 없다고. 아버지는 뼈없이 허허 웃으시기만 하고.정작 당사자인 어머니, 당신은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렇게마음이 포시라워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하셨지요. 아,그 둔감함이여.

그래, 내게는 작은 오빠가 있다. 작은 오빠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었지.이윽고 밤이 깊었을 때, 나를 가만히 불러내어 초콜릿을 사주며 다정히 껴안아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그렇게 꼼꼼하고 찬찬한 작은 오빠도 미처 거기까진 생각이 못 미쳤었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영혼이란 게 있을까. 만에 하나 영혼이 있다면 이제라도어머니는 우리 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말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이 어미의 크나큰 실수였다고. 당장 오늘밤이 아니라도 좋다. 꼭 나타나 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한 달후라도 좋고 일 년 후라도 좋다.

나는 다시 어머니, 당신에게 말한다. 당신은 꼭 우리 앞에 나타나 참회해야한다.

제 집 담벼락 밑에서 소영이가 혼자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 쓰고 있었다. 저아이도 편지가 쓰고 싶은 걸까. 올해 국민학교 삼학년인 소영이는 작년에우리동네 사람이 되었다. 지금 제 외조부 내외와 함께 앞집에서 산다. 그 엄마는 작년에 죽었다. 국민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어느 날 차를 몰고 가다가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그 슬픈 사연을 참혹하게도 걔의 입을 통해 직접들었다. 그렇게 말해 주면서 소영은 눈을 깜박거리며 손거스러미를 물어 뜯었다.

나는 소영이의 눈을 사랑한다. 익은 포도알 같은 걔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재스민 플라워}의 애잔한 선율이 떠오른다. 하느님은 왜 소영이의 맑은 영혼에 잉크 같은 슬픔을 투여해 버렸을까.

[소영이니. 동무들과 훌라후프를 돌리며 놀지 그러니. 훌라후프가 없니?][있어]

소영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땅바닥에 그렸다가는 지우고 하며 대답했다. 어린나이에 벌써 과거를 그리워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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