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타인의 시간(12)

나는 소영의 등 너머로 땅바닥을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뭉크의 목판화 {입맞춤}같은 소영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물었다.[언니가 아이스크림 사 줄까?][안 먹을래]

[그럼 이따 언니 집에 놀러 와. 언니는 지금 바빠서 곧장 집에 들어가야 하거든]

그제서야 소영은 또랑한 눈을 들어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짐짓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 주 일요일 오후에 나는 소영이에게 우리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삼 년 후, 아니면 육 년 후 어쩌면 소영이의 학교가 될지 모른다고 내가 귀띔해 준 탓인지 소영은 모든 것을 관심 있게 지켜 보았다. 나는 소영이에게연못도 구경시켜 주고 도서관도 구경시켜 주고 나의 교실과 나의 책상도 구경시켜 주며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슬픔은 참기 어려운 배고픔과도 같은 것이지만, 오래 참고 아름다운 눈으로지켜보면 우리의 마음을 별처럼 맑고 보석처럼 눈 부시게 정화시켜 준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등나무 밑에서 빼빼로와 월드콘을 사먹고 연못가에 나란히 앉아 비단잉어들의 넉넉한 유영을 지켜보다가 노을이 질 무렵 학교에서 돌아왔다.훨씬 밝은 표정이 된 소영이가 돌아오면서 말했었다.

[언니는 꼭 우리 엄마처럼 선생님 같애. 다음 일요일에는 내가 우리학교 구경시켜 줄게]

집은 썰렁하니 비어 있었다. 실은 아버지와 작은 오빠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쪽문을 밀고 들어서면 내가 늘 느끼게 되는 요즘의감정이었다. 텅 비어 있다는 느낌. 무엇인가 소중한 고갱이 하나가 빠져 있다는 느낌.

작은 오빠는 참 자상하다. 내가 하교할 쯤이면 이렇게 꼼꼼히 쪽문을 열어놓는다. 만일 내가 좀더 자라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작은오빠 같은그런 타입의 남자일 것이다. 작은 오빠는 남을 편안하게 해준다. 항상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설령 자신이 좀 못마땅해도상대가 좋아하면 결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보다 머라이어 캐리의 {위드아웃 유}를 더 좋아하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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