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인간의 증명

얼마전 그 {외람된}제목에 이끌려 하던 일 미뤄 놓고 밤새워 읽어내려간 책이 있다.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이라는 추리소설이 그것이다.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범죄를 추적해가는 특유의 논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의 묘미는 결정적인 증거를 댈 수 없는 순간에 모성에 호소하여 자식을 죽인 어머니의 죄를 스스로 자백하게 하는데 있다. 범죄는 잔인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날 것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인간성의 승리를 암시한다.물론 인간은 부나 명예, 권력의 미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또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거대한 익명의 힘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가운데 수많은 허위의식의 가면을 쓰고 산다. 그러므로 각종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들이 만연하고, 지금 세상은 한마디로 거대한 옥사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인간의 증명은 끝내 인간의 방식으로 살아있다. 풍족한밥상앞에서 르완다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고 어떠한 단단한 미움보다도 무른 사랑에 약한 것도 인간의 마음이다. 모든 사랑은 잔인하다는 냉소적인 유행가 가사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뭇 생명돕고자 법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있지만 각자 들고있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받아마신다는 화엄경의 문구가 더 진리에 가깝다.

결국 인간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실로 얼마되지 않지만 여린 눈물같은 것으로 건너가는 작은 부분들이야말로 인간의 전부를 암시한다. 예술조차 각질로은폐된 세계의 허상을 뚫고 삶의 필연성, 그 여린 속살의 질감을 확인해가려는 몸짓에 다름 아닐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삶은 각자 살아내는 것으로 증명할 수 밖에 없듯이 그 인생의 증명방법도 인간의 수 만큼 다르게 마련이다.그러나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거대한 한 물줄기에 뿌리를 대고 있고 사랑이라는 수액을 빨아들임으로써만 청청한 잎새를 달 수 있다. {인간의 증명}을누가 감히 외람되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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