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북부지방은 사람으로 치면 귀인의 풍모를 지녔다. 조선조 이래 빼어난인물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인물이 난 터(땅)이면 그 곳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니 경북 북부지방을 가보면 범접하지못할 무게와 인물의 자취를 한 눈에 느낄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인지 모른다.산촌은 가을이 아름답다. 부석사 가는 길-.
대구를 출발점으로 하여 의성-안계-예천-영주로 가는 길은 길가의 코스모스와 추수가 시작된 논, 게다가 풍기에 이르러 펼쳐지는 거무스레한 인삼밭의풍요로움이 지난 여름의 끔찍한 더위를 용케도 이겨내고 가을을 맞고 있다.풍기에서 부석사로 달리는 60리 길은 드문드문 이어지는 인삼밭으로 하여 타곳과는 다른 정취를 불러 일으킨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안향을 제향하고 있는 소수서원은 멀리서도 그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만큼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뻗어 나간 모양새는 마치 도포자락 휘날리며 걸어가는 선비들의 뒷짐진 모습처럼 허허롭다. 곁가지를 벌어 아랫도리까지 잎을 덮고 있는 5백살 은행나무도 볼거리.
양쪽에 사과밭을 끼고 소백산맥을 바라보고 달리다보면 해발 8백19m의 봉황산이 다가선다.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있다.올라가는 길은 완만한데다 은행나무와 사과나무의 절묘한 색깔의 조화에 전혀 힘들지 않다.옛 이야기에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부석사에 가보았는가]라 묻는다 한다.
만약 [가 보았다]고 대답하면 [계단이 전부 몇 개이던고] 묻는단다. 알아맞히면 극락에 보내준다하니 부석사를 찾게 되면 계단 수를 세어보는 것도 큰재미일 것. 계단을 세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은행나무와 사과나무의 황홀한 색깔과 고색창연한 석축, 무량수전의 늠름함, 봉황산고목들에서 떨어지는 낙엽, 멀리 아래에 보이는 태백산맥의 준령들... 그 가운데 서 있으면 극락이 따로 어디 있으랴. 게다가 이름마저 부석사가 아닌가.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된 책자가 많아 생략하기로 한다. 안타까운 일은 수년전 정화작업으로 오른편의 사과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손가락 굵기의이름 모를 나무들을 몇 그루 심고 잔디를 깔아 본래의 경관을 망쳐놓더니 이번엔 무량수전앞 마당을 시멘트로 덮어 무량수전과 안양루의 아름다운 풍치를반으로 줄여 놓았다. 곧 왼쪽의 사과밭도 없앤다고 하니 부석사의 볼거리도하나 둘 사라지고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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