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악성-{포청천}, {지존}, 그리고 제2사정

상파울루 근교에는 세계의 이름난 대도시가 다 그렇듯이 집단 빈민촌이 있다.우리네로 말하자면 달동네나 산동네같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집단거주지다.바로 그 상파울루 빈민촌 젊은이들의 가장 큰 꿈은 무엇일까.대통령이 되는것? 펠레같은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는것?그럴싸하지만 그런건 그들의 꿈이나 희망종목에 들지않는다. 그들이 영웅시하고 누구나 야심처럼 품고 있는 꿈은 {은행 갱}이 되는 것이다.언젠가 한번은 산아래쪽 화려하고 호사스런 부자거리의 은행을 멋지게 털어서 신세(신세)를 확 바꿔보는 것이다.

가진자를 터는 것에서 죄의식이나 양심의 갈등을 느끼기보다는 거꾸로 영웅적인 {성공}으로 인식하는데서 빈부의 계급투쟁이 시작되고 있다.더 무서운 것은 한건 털고 빈민촌속으로 숨어버리면 그야말로 {소도}처럼 영웅을 숨겨주는 빈민들의 묵시적 저항에 경찰의 추적은 빈민굴 입구에서부터미로로 빠지게된다는 사실이다.

지존파의 비인륜적 범행을 한목소리로 비난하는 우리쪽 정서와는 사뭇 다른구석이 있다.

그러나 유사한 부분이 전연 없지도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지존파들이 야타족이나 세무비리 공무원, 탈세재벌총수를 {그렇게}했어도 똑같은 강도의 비난을 보냈을것인가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몇명쯤 파리 목숨처럼 쏴죽이고 돈다발 털어 빈민굴로 숨어들어온 빈민동지(?)를 숨겨주는 심정과 유사한, 이를테면 일부 야타족따위의 질나쁜 가진자는혼좀 내줘야한다는 류의 심기가 사회밑바닥에 깔려있다는 현실이 그렇다.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매우 놀랍고도 우려되는 반응은 불안을 던져준다.왜 우리의 극소수 가진자들은 지존파같은 비인간적 범죄자들로부터 공격(범죄수단의 잔혹성은 예외로 하고)을 받아도 싸다는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가.우선 지난 추석, 인상적인 TV특선명화 {포청천}을 생각해보자.중국 역사상에 그러한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중국인의 긍지로 여긴다고 할만큼 출중했던 한 청백리 검찰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임금의 사위든 승상의 사위든 비위에 관련된 고관대작은 가차없이 처단한 공정함과 흔들리지않는 소신을 극적으로 보여준 {포청천}의 감동은 야사적 흥미보다는 우리 검찰이나 사정기관에 그같은 인물이 한줌만큼이나마 있었어도 세상이 이토록 제멋대로 풀리고 기강이 깨지겠느냐는 아쉬움이 앞선 작품이었다.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1억원씩 뇌물을 뿌린 재벌총수들은 하나같이 탈없이 어물쩍 넘어갔다. 권력층 측근들은 아무리 부도덕한 비리에 연루돼도 빽덕분에 금방 되불려가서 승승장구 출세하고 있다.

육군본부에서 총 몇방만 잘쏘고 이기면 단 한탕에 대권 잡고 쿠데타라 고발해도 똑부러진 시비가 가려지질 않는다.

외화 밀반출의혹을 샀던 전직 대통령 딸은 일부 언론의 의심이 풀리지 않은비난 속에서도 무혐의로 풀려나온다. 그런 가운데 포청천 같은 의로운 자마저 나타나지 않는다.

무전유죄를 절규하며 꺼져간 반사회적 저항아들은 한국형 포청천은 언제나없는자 약한자, 쿠데타에 밀린자에게만 군림한다는 반감을 안고 이글거리는불씨를 끄지않은채 속으로 감추고 있다.

그런세상에 말단 세무담당공무원이 돌아버리지 않을수 없겠다는 묘한 {이해}가 나오게 되고 지존파 같은 미치광이가 나올수도 있겠다는 위험한 동조가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옆에서도 남들이 다 나쁜짓을 하고 있으면 나역시 나쁜짓을 해도두려워지지 않는 집단심리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소를 훔치는 힘센 도둑이 사방에서 설치는걸 보면 밑바닥인생이 닭한마리 훔치는것쯤 큰죄될 것 없다는 심리. 거기다 포청천같은 의인은 보이지 않고 기강쇄신구호만 요란한 허구성에 대한 냉소.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병을 앓으면서 구석구석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그걸 제2사정으로 해결하려든다.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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