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타인의 시간(68)

언니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따금 손을 뻗어 목과 가슴에 물을 끼얹어가만히 문지르는 언니의 자세는 감미로운 음악처럼 느리고 부드러웠다. 도무지 대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미 언니의 가슴은 독한 알콜로 다 태워 버린 느낌이었다.[알고 있었니?]

냉랭한 가슴에 불을 지피듯 내가 마침내 그 일기속의 비밀을 말해 버렸을 때도, 언니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그렇게 덤덤히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나는그만 제풀에 시들해져 입을 다물었다. 현재의 언니에겐 그 어떤 언어도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의와 잠옷을 가져와 언니에게 입혀 주었다. 언니가 비틀거리며, 그러나 침착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않아 방안까지 뒤를 밟았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언니가 얌전히 침대에 눕고 있었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하루였다. 나는 그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수족관 속의 금붕어들은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여전히 수풀 사이를 헤집으며 유영하고 있었고, 오분이 늦는 주방의 벽시계는 벌써 새벽 한시를 넘기고있었다.

나는 대문을 확인하고 베란다 새시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걸고 마침내 거실의불까지 끈 다음 다시 언니 곁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아직 자지 않고 멍한 시선을 천장에 붙박고 있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있을 때 언니가 말했다.

[너 참 무서운 애로구나. 왜 진작 엄마한테 일러바치지 않았니. 그랬으면 엄마는 벌써 놀라 자빠지셨을 거구, 지금쯤은 엄마 따윈 아무 문제도 안됐을텐데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스위치를 내리고 언니 곁에 눕자 언니는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껴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니. 차라리 영원히 새지 않는 밤이었으면좋겠어]

횡설수설하는 언니를 가슴으로 느끼며 나는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그래도 낮이 좋아, 언니. 밤은 자꾸 슬픔만 키워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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