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모양이었다. 사오월 내내 제발천둥 번개 치고 감사나운 비만 주룩주룩 내리라고, 언니의 파란 꿈에 왕소금을 뿌려도 언니는 별로 가슴에 새기지 않았다. 그런 언니였기에 내 가슴은 더애틋했다. 정말 한 모숨의 가능성도 없는 건가. 언니는 왜 그토록 쉽게 자신의 꿈을 포기해 버렸을까. 나는 마침내 말해 버렸다.[조퇴를 해야 돼]

[이제 괜찮다면서 조퇴는 왜]

은유가 덴겁해져 물었다.

[어딜 갈 데가 있어]

[마치고 나하고 같이 가면 안 되겠니]

[오전에 가야돼. 누굴 만나야 하거든]

그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고 계셨으므로 우리는 급하게 화장실을나왔다. 앞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선생님보다 먼저 재바르게 뒤 출입문으로 들어서며 은유가 말했다.

[이따 봐]

2교시 후 나는 조퇴 허가증을 받으러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로 들어갈때면웬지 조심스러워 나는 약간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 다소곳이 담임 선생님곁에 섰다. 어머니의 일을 전해 들었는지 주위의 선생님들이 유달리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맡고 있지 않지만 1학년땐 학급 부회장을맡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선생님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좀 못마땅했지만 얼굴을 붉히며 잠자코 있었다.

내가 조퇴 사유를 말하자 담임 선생님은 얼른 납득이 안 되는지 한동안 턱을괴고 있다가 물었다.

[꼭 승혜가 가야 돼?]

[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조퇴 사유를 병원 정도로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얼굴을 팔고 싶지가 않았다. 그랬다면 선생님은 두말없이 조퇴 허가증을 단박 알아보지 않았던가, 어디 아프냐고.

[한번 조퇴하면 삼년 개근상도 못 받는거, 승혜도 알지? 그래도 가야 돼?][네]

나는 여전히 명료하게 대답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