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19=정승화씨등 22명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등 신군부측 핵심인사 38명을 군형법상 반란 및 반란목적 군용물 탈취등 혐의와 형법상 내란혐의 등으로 대검에 고소.대검, 4건의 관련 고발사건과 함께 이 사건을 서울지검 공안1부에 배당.*93.8.16=고소인중 처음으로 정승화 전계엄사령관을 소환, 조사.그후 93.11.8일 당시 3군사령관 이건영씨에 대한 소환.조사를 끝으로 22명의고소인 조사를 마무리짓고 이어 1개월여 동안 고소인 조사자료 정리.*93.12.11=당시 수경사 작전참모였던 박동원씨(예비역 소장)를 필두로 3월중순까지 1백여명의 참고인 소환,조사.
*94.3.23=당시 한남동 총장공관에서 정승화씨를 연행한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씨 소환.조사.
그후 7월말까지 유학성.거규헌.황영시.박희도.최세창.박준병.장세동.김진영씨등 12.12 당일 {경복궁 모임} 참석자들과 당시 5공수여단장 장기오씨, 합수부 조사국장 이학봉씨 등 피고소인 35명(사망한 전71방위사단장 백운택씨 제외) 소환.조사.
*94.8.12=피고소인인 전.노 두 전직 대통령과 최규하 전대통령(참고인 자격)에게 서면질의서 보냄.
이날 신군부측 핵심인사인 박희도.최세창씨등 8명은 "당시 정승화계엄사령관의 연행은 정당한 수사집행이었는데 정사령관측이 이를 방해했다"며 장태완.김진기씨등 고소인 2명을 내란및 반란 혐의로 맞고소했으며 이후 약 한달간피고소인측의 고소인측에 대한 맞고소 이어짐.
*94.9.3=노 전대통령이 {12.12사태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해 의혹이 있던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인 충돌사건일뿐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검찰에 제출.*94.9.15=전두환 전대통령도 노 전대통령과 비슷한 취지의 답변서 제출.*94.9.27=최규하 전대통령이 참고인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검찰에 통보.*94.10.29=검찰 최종 수사결과 발표.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