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 타인의 시간(97)-도도의 새벽 ⑭

"그렇지가 않아. 그만큼 우리를 사랑했다는 증거야. 난 엄마가 참 존경스러워. 나는 죽었다 다시 깨어난대도 엄마처럼 행동할 수 없을 것 같애. 이제꿈에 엄마가 나타나도 미워하지 않을거야"나는 오빠를 위로하듯 말했다.

"내가 꼭 합격했어야 하는 건데 "

작은오빠가 자책하고 있었다. 나는 작은오빠가 그때문에 여태 괴로워했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난 지금도 무서워 죽겠어. 자꾸 걱정도 되고.난 아까부터 '주홍글씨'가 떠올랐어. 헤스터처럼 우리도 가슴에 'A'자를 달고 다녀야 될 것 같은 끔찍한 생각이 들었어. 정말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몰라.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고통이따르게 될 거란 점이야. 너한테만 말하자면 나부터 아버지가 다르게 느껴졌어. 그런데 제삼자는 오죽하겠니. 어쩌면 우리만 이 사회에서 고립될지도 몰라. 아무도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으려 할 테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이상 바보처럼 당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나는 형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생각해"

"그래도 두려워"

"두렵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견뎌내야 해. 어머니를 위해서도""너희들, 이러고 밤 새울 거니?"

잠옷바람의 언니가 깔깔한 그림자를 이끌고 올라왔다. 우리를 향해 팔짱을끼고 서 있는 언니의 목소리에는 역정이 묻어 있었다. 긴 한숨도 그 목소리뒤에 따랐다. 나는 오빠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습관처럼 궁둥이를 떨며 작은오빠가 일어났다. 작은오빠가 앉았던 자리엔 눈물이 피처럼 뿌려져있었다.

언니를 선두로 우리가 계단을 내려왔을 때, 마지막 남은 건넛집의 불마저 꺼졌다. 집안은 여전히 무덤속 같은 고요 속에 파묻혀 있었고 안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이층에서 청승을 떨고 있을 동안 언니가 그릇들을 부셨는지 싱크대 개수통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언니의 그 태평스러움이 부러웠다

작은오빠가 큰오빠의 방으로 자러 들어가자, 숫제 거실의 불까지 끈 언니는나를 방으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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