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이창호는 강하다. 도대체 다른기사들은 왜 조훈현 이창호를 꺾지 못하는것 일까. 새삼스러운 질문이 아닐수 없다. 진부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그'비밀의 저편'에 대해, 지난13일 두어진 기성전 도전7번기 최종국은 해답의절반을 보여주었다. 해답도 사실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그바둑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은 각자 한웅큼의 감동을 품에 안고 발길을 돌렸다.바둑은 밤11시반이 넘어, 자정가까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대국장은 관철동의'한국기원 종로회관', 예전의 한국기원이다. 바둑이 11시반 넘어 끝난것은기록적이었다. 바둑이 기록적으로 늦게 끝났을 뿐아니라 검토실에는 '기록적으로' 많은 사람들, 프로기사와 취재진과 아마추어 팬들이 바둑이 끝나기를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이 되어가는데도 사람들은 일어설려고 하지 않았다.바둑이 끝났다는 전갈에 검토실의 사람들은 밀물처럼 대국장으로 들어갔다.두 대국자와 기록자, 그렇게 세 사람이 지키고 있던 대국장은 순식간에 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기에 꽤 오랫동안 실내는 정적에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모두 패자처럼 늘어져 있었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실제 소음은 거의 없었지만그때 실내의 소리라고는 그것 뿐이었던 탓이다. 조훈현의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장장 오늘 하루, 아침 10시부터 지금까지 14시간 동안 발동기처럼 떨어대던 조훈현의 다리도 이제는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얼굴에 땀이번지르한 이창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안면 근육이 가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침묵의 군상. 그 풍경에는 무슨 슬픔같은 것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바둑은 일찌감치 조훈현의 페이스로 흘렀었다. 조훈현은 일류의 눈부신 쾌속행마를 선보이며 반면을 압도해 나갔다. 두 사람은 처절한 장고를 주고받았다. 이창호가 45분을 생각하고 한 수를 두면 조훈현은 58분을 숙고한 후 응수를 하는 지루한 줄
다리기가 거듭되고 있었다. 오후 6시, 저녁 휴식시간이 될때까지 반상에는채 80수도 놓이지를 않았다. 형세는 흑을 든 조훈현의 절대 우세. 대개가 조훈현을 편들고 있던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랬는데 밤 9시가 넘어가면서 흑에게 변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수이득을 보아야 할 자리를 보류하고 있다가 빼앗겼으며 물러서지 않아도 괜찮은 대목에서 조금씩 후퇴를 하고 있었다. 한없는 인내로써 교무실로 불려가는 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조훈현의 뒤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따라가던 이창호의 걸음이 문득 빨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 10시를 넘기자 국면은 마침내 역전이 되었다. 조훈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들어온 검토실의 프로기사들과 취재진과 관전객들은 오늘도 악령처럼 되풀이된 엄청난 배신, 12시간만에 이루어진 역전 앞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이창호에 대한 두려움, 그 정체모를 공포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면서 실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결과는 백의 2집반승이었다. 사람들은 애써 가능하면 빨리 그 결과는 잊어버리려 하는 눈치였다. 대신 사람들은 조훈현 이창호가 왜 강한지를 가슴에 새기는 모습들이었다. '온몸을 던지는 자가 강한 것'이다. 아니, '온몸을 던지는 자라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해답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사실의 발견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보다 평범한 진리의 확인이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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