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이문열·소설가, 세종대교수)-맹호출림의 세

영남사람의 기상을 일컫는 말로 옛부터 내려오는 한문성어로는 맹호출림이란게 있다.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뛰쳐나오는 기세, 그 뿜어나오는 힘과거침없고 당당함이 대구를 중심한 옛영남의 기상이었다. 자부심으로 가슴에품어도 좋을 영남의 정신적 유산이기도 하다.대저 호랑이란 어떤 짐승이던가. 희노에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분노를 드러내면 벽력이 울고 천지가 흔들리는 위엄을 지녔다. 무리짓거나 간교한 꾀로 일을 도모함이 없고 다투고 이겨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우러나는 왕자의 천품을 타고났다. 일없이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거니와 굶주려도새앙쥐는 잡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 들리는 소문은 이제 대구도 영남도 그러한 옛 기상을 잃어가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일게 한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역감정에 휘말리어 일희일비하고 분노조차 위엄을 잃어 천박한 투정처럼 보인다. 무리짓는 모습이 마뜩찮고 잔꾀와 지혜를 구별하지 못하며 작은 이익에 쉽게 동요한다는 평도 있다.

**영남의 정신유산

92년 대통령선거 막바지쯤 해서도 대구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말이 나돈적이 있었다. 입후보자중에 하나인 재벌총수가 벌거숭이 금권을 휘둘러 묘한상실감에 빠져든 지역정서를 공략한 것이 만만찮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크게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고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호랑이는 굶주려도 새앙쥐를 잡지 않았다.

그 뒤 대구정서란 말이 제법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매스컴을 떠돌때에도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그무렵이한창 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때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구사람들의 남다른 애향심이나 동향인에 대한 믿음과 정은 널리 알려진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확고한 도덕적 원칙과 자긍심에 바탕한 당당한 자기확인 같은 것으로, 편협한 지방색이나 파당의식과는 다르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대구정서란 그걸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싶은 구닥다리 정치인들의 희망사항쯤으로 여겼다.

**지역정서 공략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대구·경북인사들이 공직을 잃거나 정계에서밀려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공직자 재산공개에서도, 군의 비리숙정에서도 지역출신의 여러인물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해임되었다. 더욱 심하게 어떤 이는 감옥에 가고 어떤 이는 망명객처럼 해외를 떠도는 일도 생겼다.동향인의 정으로 그런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못을 저질러 얻어 맞고 돌아와도 집안의 형제는 감싸주고 위로하기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인정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까지 바꾸어 놓는 지역정서의 바탕이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특정지방의 지역감정에 대해 걱정한 것은 어디에 사는가가 선악이나 시비의 기준까지를 달리하게 되는 극단한 경우 때문이었다. 내고장 출신의 지도자는 무조건 옳고 그들이 이끌지 않는 정부는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단순논리를 우리는 답답하게 생각해왔다. 그것은 진정으로 내고장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내고장 사람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당당한 기상살려야

그렇지만 이번 지방자치선거를치른 뒤로는 솔직히 자문해보고 싶어진다.우리 대구·경북인들에게 아직까지도 다른 지방의 지역감정을 걱정하거나 답답하게 여길 자격이 있는가고. 맹호출림의 당당한 기상이 살아있는가고.어떤 이는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지역의 정치적 지분을 이만큼이라도 지켜낸 것에 흡족해 할는지 모른다. 천박한 지역감정을 자극해 얻은 정치적 과일을 달디 달게 핥고 있는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앙쥐를 잡아 맛있게 뜯어먹고 있는 호랑이를 보듯 민망히 여기는 눈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