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친잠이란게 있었다. 조선초기부터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둔일련의 의식을 말한다. 기록으로는 태종비가 1411년 처음 시작했고 한일합방후인 1924년 순종효황후 윤비가 수원잠업시험장에서 행한 것이 마지막으로되어 있다. ▲양잠에 관한한 '실크로드'를 만든 중국이 세계적임은 두말할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조선조 태종이 왕명으로 '양잠경험촬요'란책을 이두문으로 번역해 출간토록 했으니 그 관심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이때 경상도 관찰사 안등이 주선하여 경주에서 간행했다. 경북 상주지방이한국양잠을 주도했음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물론 양잠은 일제가 조합까지만들어 한국을 잠업원료공급기지로 만드는등 한때 대표적 식민지농업형태로발전해온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고치수매가 결정은 추하곡·잎담배수매가와 더불어 한해 농가살림살이를 좌우할 정도로 비중이 큰 것이었다. 뿐아니라 외화수입의 상당액을 차지하던 몇안되던 농업부문의 '자존'이기도 했다. ▲수입개방후 값싼 중국산에 계속 밀리던 한국양잠업이 지난달 잠업법시행령 개정에 따른 수매의무를 없앰으로써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정부 스스로 대외경쟁력 회복불능 상태임을 선언한 꼴이다. 물론뽕잎으로 차와 국수를 만들고 누에를 햇볕에 말려 당뇨병약으로 판매하는 방법등이 권장되고 있다. 농가소득이야 나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쉬운포기'가잇따르지는 않을지 착잡한 감도 없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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