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남패트롤-사명대사 유적지 "성역화"

밀양시는 무안면 고라리 399일대의 사명대사 생가를 복원하고 성역화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밀양시는 2천8백여평의 부지에 사업비 15억6천2백여만원을 들여 지난 7월말 기본설계용역을 발주하고 사업착수에 나섰다.이에따라 사명대사 생가 복원을 위해 지역유지와 출향인사로 구성된 사명대사 유적지복원사업추진협의회를 발족하여 복원사업에 관한 세부계획을 세우고 관계요로에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또한 8월에는 대사의 생가지 고증을 위해 '사명대사 실기' 집필가인 신학상씨(91)와 대사유품을 보관하는표충사 문화원 향교 마을주민 등 각계에서수집한 고증자료에 의해지난 92년 10월 경남도로부터 지방기념물 제11호로지정을 받았다.

이 성역화사업을 위해 밀양시는 지난 4월에, 총 부지중 잔여분 3백39평의매입을 끝내고 성역주변의 부지조성사업을 위해 농지전용허가까지 받은 상태이다.

한편 시는 사명대사 생가지 일대의 유구조사와 실증적인 자료에 의한 고증을 위해 2천8백만원의 예산으로 전문연구기관에 학술적인 조사와 설계용역을발주했다.

사명대사는 155년(중종 35년) 임수성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읽게되자 그 깨달음이 있어 출가하여, 김천 직지사에 들어가 삭발하고 중이 되었다.

대사는 18세때 승과에급제하고 32세때 묘향산으로 들어가 휴정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어 득도하고 서산대사의 정법을 이어받고 1592년(선조25년)임진왜란때 승병도총섭이 되어 의승병을 이끌고 도체찰사인 유성룡을 따라평양에 진격, 왜구를 격멸시키고 평양성을 재탈환하였다.

한편 대사는 영남지방에서도 팔공산 금오산 등지에 성을 쌓아 군량미 무기등을 비축하여 방어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대사는 전쟁이 끝난후 모든 관작을 사양하고, 수도하다 가야산으로 들어가1610년(광해군 2년)에 그곳에서 입적했다. 〈밀양·김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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