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KGB와 나-사상무장없이 급파 손쉽게 전향

스탈린이 사망한 후 수십년동안 당의 수뇌에는-안드로포프가 중앙위원회서기장 직을 지냈던 매우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말로만 임무를 수행했던 정치인들이 직분을 맡았다. 이들은 첩보세계의 문외한으로서 당내 신중한 학자들, 즉 사회학자,철학가,정치학자,역사가들의 충심어린 조언들이 묵살됐다.미국이 과장되게 선전한 소련내 인권침해와 반유태주의에 적절히 대처하지못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우리로선 비극이 아닐수 없다.다시 옛날로 돌아가, 성공적인'이중간첩' 사례와 함께 당시 미국이 운영했던 스파이학교를 소개하겠다.2차대전 직후소련에 파견된 서방의 특수요원중 사상적인 이유로 행동한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주로 이들은 두가지 경우로 구분된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이 일을 택한 부류이며, 나머지는 완전히 기만당한 사람들이다.

보통 임무에 실패한 간첩들은 다양하게 처신한다. 자신의 죄를 강력히 부인하거나 바로 그자리에서 모든 것을 실토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스파이들은 '압력'을 받아야 말하기 시작한다.

일명 보브라는 이 사나이는 첫 신문에서 스스로의 죄를 인정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불행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자신이 졸업한 미국 스파이학교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폭로했다. 이 부분은 우리로선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1950년대 뮌헨에서 50㎞ 떨어진 타겐제 지방에 다른 건물들과 떨어진 한때독일 주재 중국 영사 순페이 소유였던 2층짜리 대저택이 있다. 여기가 바로미국 스파이학교다.

중국 양탄자,가구,도자기 꽃병등 전 소유주가살았을때 처럼 모든 것이그대로였다. 공식적으로 이 건물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사립학교였다. 그러나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설혹 누군가 우연히 이곳을 들렀다 하더라도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학교 운영과 강의는 모두 첩보기구 전문요원들이 맡았으며 러시아인도 끼어 있었다.

1955년 중반 며칠 간격으로 이 학교를 졸업한 8명의 졸업생이 두명씩 조를이뤄 소련 각지역으로 파견됐다. 주요 산업체에 대한 스파이활동과 교란행위가 목적이었다. 이들 요원들은 모두 훈련도 잘 돼있었으며 실패하지 않도록모든 세부사항까지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보원이 이 학교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파견되는지, 은신처는 어딘지 훤히 알고 이들을 기다렸다.

이들중 뾰뜨르 꾸드린, 일명 보브가 있었다. 그는 아주 어렸을때 퇴각하는독일인을 따라 고향을 등졌다. 낯선 곳에서 집도없고 일거리도 없어 미국스파이학교에 입교했다.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자료를 주었고 모든 질문에상세히 답변했다. 스파이학교의 생활과 양태,일일 질서,교과시간표, 교사들의 외모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는 9개월동안 타겐제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주일에 5일은 쉴새 없는가혹한 훈련의 연속이었다. 고공낙하,사격,공격과 방어무술등. 특히 야간 낙하산 훈련이 가장 힘들었다. 이외도 무선통신 이론과 실습, 소련 역사, 도로체계, 내무성과 KGB 활동 구조 및 방법, 소련군의 구조와 규율, 암호 및 암호표기법,요원들의 보고서 작성,눈으로 본것을 기억하는 훈련을 받았다. 또술을 마시면서도 취하지 않는 기술도 배웠다.

특히 이고르 세르게예비치라는 교관은 날이 저물어 학생들이 기진맥진할때까지 훈련을 시켰다. 우리는 그가 노련한 미국정보원인 홀리데이 대위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낙하기술이 탁월했다. 한번은 보브를 비롯한학생들에게 손을 잡고 원을 그리게 한뒤낙하산으로 정확히 학생들 사이에착륙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구식 낙하산으로 이만한 기술을 가진 이는드물었다.

1955년 4월 9일, 그날도 제1조인 보브와 잭은 아침 6시 30분 신호와 함께기상했다. 정확히 7분후그들은 운동장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7시부터7시 30분까지 침대를 정리하고 면도, 세수를 했다. 정해진대로 7시 38분, 각자는 1층의 대강당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8시부터 수업.

첫 수업은 암호 표기법. 명랑한 욜더 대위, 일명 볼로쟈가 강의했다. 이수업에서 그는 새로운 방법을 설명했다. 물에 몇 방울의 피를 짜내 희석시켜행간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불에 가까이대면 글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보다시피 가장 간편하고 손쉬운 암호표기법이다. 물과 몇 방울의 피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만 이용토록. 혈흔 조사로 주인을 찾아낼수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이날 오전 그는 교장 보리스 마르티노에게 불려갔다. 그의 집무실에는 잭이 벌써 와 있었다. 교장은 처음으로 날아온 대영예가 그들에게 닥쳤음을 설명하고 과업의 시작을 축하해 주었다. 각자에게 '전설'(가짜 경력)과 함께지령을 내렸다.

보브는 안드레이 파블로비치 바실리예프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받았다. 형무소에서 발급한 증명서에는 그가 특사로 출옥됐음이 기록돼 있었다. 또 다른 증명서에는 다른 필적으로 KGB요원 바실리예프임을 증명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들은 공항으로 출발했다. 국적이 부착되지 않은 미제 4기통 폭격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 앉았을때 홀리데이대위가 보브의 셔츠 안쪽 깃에 칼자국을 내 조그마한 앰풀을 하나 쑤셔 넣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 실패하거나 자신이 없을때…. 잘 알겠지만 그들로부터 편안한 죽음을 기대하지 말게.앰풀을 꺼낼 필요는 없어. 단지 조금 깨물기만 하면 독이 순식간에 퍼질거야. 자네는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마치 꿈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일거야"라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그가 말했다.

비행기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장대같은 빗속에 3백m 고도로 날았다. 2명의 스파이학교 졸업생을 태운 폭격기는 소련 영공을 넘어서자마자 국경 수비대의 방공망에 걸려들었다.

고사포병들은 폭격기가 소련영공을 넘어 사라질때까지 포를 발사했다. 우리는 미리 들어온 정보도 있고 해서 낙하산을 타고 내린 자들을 수색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장비를 비밀장소에 숨기지도 못한채 체포됐다. 나머지 3개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말한대로 우리는 보브의 말을 다 듣고 그의 말을 믿었으며 우리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이중스파이임무였다.

그는 미국의 지령대로 모스크바 인근에 있는 온도계 생산공장에 취직했다.여기서 그는 군 비행장을 감시하고 보고해야 했다.

숲사이 나무꼭대기에서 무전을 보내야 했기에 비행장이 잘 보이는 곳에 그를 배치했다. 보브는 며칠동안 본 것은 모두 기록하고 관찰, 미 정보기관에보고했다.

얼마후 우리 첩보원은 베를린의 미국 정보요원에게 다른 비밀 자료와 함께끌리나의 군 비행장에 관한 정보를 '팔아 넘겼다'. 이 정보는 보브가 알려준것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정보가 한사람에게로 흘러들어가고, 파견된 간첩의 정보에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반년동안 무전 연락이 됐고 이는 우리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센터의 질문에 따라 적과 다른 많은 이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넘겨준 26개의 암호는 우리에게 적의 무전내용을 훤히 알도록 해 주었다.

보브와 한조였던 잭을 비롯한 3명의 운명도 보브와 유사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나 나머지 4명은 그다지 솔직하지 못했다. 특무협의회는 이들에게 총살을 선고했다.

보브 아니, 뾰뜨르 꾸드린은 지금도 생존해 있다. 그사이 결혼도 하고 딸하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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