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232)-강은 산을 껴안고(25)

밥을 먹고 나선다. 물을 마시고 싶다. 부엌 쪽문을 연다. 할머니가 없다.내가 물 떠올께, 하며 순옥이가 부엌으로 나간다. 잠시 뒤 꼬부장한 할머니가 삽짝으로 들어선다. 큰 전지가위를 들고 있다."할머니, 우린 산을 한 바퀴 돌고 올께요. 날씨도 좋고, 산천 경치가 기막혀요" 짱구가 말한다. 하늘이 맑다.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난 여름은 너무 더웠다. 비도 많이 내렸다."우리 시우는 데려가면 안돼요. 나랑 함께 가야 하우. 뒷산에 시우 아버지묘가 있다우. 올해는 시우가 제 손으로 벌초를 해야지"

할머니가 말한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짱구가 씨억하니 대답한다. 마당으로 나선다. 건너 집에서 한서방이 마루로 나온다. 잘 주무셨냐고 짱구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전지가위를 받아든다. 순옥이도 따라 나선다. 할머니가 앞장을 선다. 내 조금 후에선산으로 올라가마, 하고 한서방이 말한다. 우리는 고샅길을 거쳐간다. 동네사람들을 만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시우가 아버지 묘에 벌초를 다하구" "마선생이 저승에서도 기쁘시겠다"동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나는 그저 미소만 보낸다. 나는 아직도 그들을대하기가 부끄럽다. 금방 머리를 숙인다.

수수밭을 지난다. 알알이 영근 수수열매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개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돌 틈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돌돌 흐르는 물소리에 귀가뚫린다. "오빠, 또 잡았어!"개울 어디에선가 시애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애와 나는 이 개울에서 가재를 잡았다. 잡은 가재를 물 채운 병에 담았다. 집으로 가져가면 아버지가야단을 쳤다. 아버지는, 당장 개울에다 놓아주라고 말했다.

"들국화맞지? 들국화가 많이 피었어"

순옥이가 들국화를 꺾으며 걷는다. 주위로 진달래, 옥잠화, 붓꽃, 피나물,앵초, 얼레지, 하늘나리들이 섞여 자란다. 이곳은 봄부터 여름까지 다투어꽃이 핀다. 온통 꽃동산이 된다. 어릴적, 동네 아이들은 이 둔덕에서 놀았다. 숨바꼭질을 하고 말타기놀이도 했다. 나는 끼워주지 않았다. 시애가 애타했다. 나는 구경을 하는 게 더 좋았다.

"마두, 저것봐. 올챙이에 미꾸라지 합성종 같네. 도마뱀 맞지?"짱구가 손가락질 한다.

"맞지 않아. 도룡뇽이야"

내가 말한다.개울가 젖은 돌에 도롱뇽이 앉아 있다. 고산지대 찬물에만사는 희귀종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