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한·라오스 국교 재개

한국과 라오스는 단교 20년만에 수교에 합의,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우리와 라오스는 지난 74년6월 외교관계를 맺었으나 75년7월 공산정권수립으로 단교했으며 라오스측은 그동안 북한과 단독 수교관계를 유지해왔다.라오스의 '변화와 개방'이라고 봐야할 이번의 수교는 탈냉전이후 급격하게밀려오는 실용주의 내지합리주의적인 새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서는 국제사회 대열에 동참할수 없었기 때문에 취한 어쩔수 없는 조치이기도 하다. 지난75년12월 일당 사회주의독재체제를 구축한 라오스는 동서가 화해무드에 접어들어도 쿠바·시리아·캄보디아와 함께 오히려 문을 안으로 걸어잠근채 북한의 극소수 맹방으로 남아 있었다.

미개방상태의 쇄국정책은 주린 배를 더욱 주리게 할뿐 전혀 발전적이 아니란 것을 간파한 라오스정부는 지난 93년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확대외무장관회의(PMC)에서 은밀하게 우리측과 접촉, 수교논의를 시작했다. 라오스의 닫혀진 빗장이 살며시 열리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이웃 베트남의 개방이 크게 작용한 것같다.

베트남은 92년12월 월남전의 앙금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오로지 '경제발전'이란 대명제 아래 실리를 위해 우리나라와 수교결정을 내린 것이 미수교 이웃나라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그들의 '형제적 우방'들이 서서히 개방화 물결을 타고 멀어져 가기 시작하자 회유와 방해공작을 집요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강성정무원총리는 지난해 6월 라오스를방문, 경제과학기술협정을 맺었으며 케이손전라오스대통령의 대형 동상을 제작 기증하기도 했다.

북한의 따가운 시선이라오스를 떠나지 않게되자 당초 예정했던 수교일은두차례에 걸쳐 늦춰졌으며 라오스내 보수강경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자칫 외교관계수립계획은 물거품이 될뻔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경제력 즉 돈의 힘은 이데올로기까지 뛰어 넘을 수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라오스측은 지난 8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PMC에서연내 수교방침을 재확인, 결국 10월25일 수교합의 공동성명서에 사인을 했던것이다.

라오스의 면적은 한반도보다 약간 크고 인구는 4백70만명이지만 국민소득은 2백97달러선이다. 이번의 수교로 우리나라의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얻기위해 대거진출, 두나라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라오스와의 수교의미는 아무래도 정치쪽에 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베트남에 이어 라오스와의 수교는 인근 캄보디아에 반드시 영향을 주게 될것이다. 우리나라의 힘이 아시아 중심부인 인도차이나반도에까지 미쳐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면 결국 북한도 생존을 위한 개방을 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수교도미노현상이 큰 물결을 일으켜 북한에까지 뻗쳐 그들이국제사회로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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