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선택 갈등 동반언뜻 보면 모든 것은 무질서하며 따라서 무의미한 듯싶다. 자연은 소용돌이며, 세계는 혼란이고, 삶은 혼돈만 같이 느껴진다. 태풍, 지진등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다.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 사회적 분쟁, 국가간의 전쟁등으로 인간사회는 항상 어지럽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선택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필연적으로 지적 및 도덕적 갈등을 동반한다. 밤하늘을 장식하는 수많은 별들도 무질서하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나 하면 어느덧 잎이 지는 나무들, 언뜻 거울속에 비친 백발의 자화상, 뜻밖에 받은 친구의 부고에서 세월의 흐름과 인생의 허무,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궁극적 무질서를 느낀다.
그러나 멀리서 다시 되돌아볼 때 하늘의 별들이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황홀하게 하고 경탄하게 하는 것은 그것들 속에 잠겨있는 우주적 깊은 질서 때문이 아니겠는가. 싱싱한 녹음에서 아름다운 단풍으로의 전환, 아름다운 단풍에서 메마른 나무가지와 죽은 풀밭으로의 변화 속에서 또는 어느날 눈에 띈 백발이 된 자신의 모습이나 어느날 갑짜기 날아온 친구의 부고에서 모든 삶의 무상성을 조용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암암리에 인간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그러나 무한히 깊은 우주의 질서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근시안적 욕망 추구
이미 고대 동서의 철학들은 표면적으로는 혼돈에 가까운 모든 현상 속에서 '이데아'아니면 '道'등으로 표기되는 우주의 형이상학적 질서를 발견했다. 그러한 질서를 갈릴레이 이후의 근대과학이 뒷받침한다. 철학자나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사자와 칙말, 하이에나와 치타, 황새와 개구리들은 각기 자신들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모든 동물들간에 그리고 동물과 식물들 간에 먹이사슬의 관계를 맺고, 그러한 사슬은 신비롭다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생태학적 질서를 보여준다.이러한 우주의 크나큰 질서의 테두리안에서 인간의 각 개인의 삶과 죽음,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 종으로서의 인류, 인류문명은 종교적 깊은 의미를 띠고 숭고한 미를 띠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실적 눈앞의 생물학적 욕망만을 근시안적으로 추구하는데만 눈이 어두워 거시적 차원에서 그 넘어 존재하는 무한히 아름답고 고귀하고 신비스럽고 영원한 우주의 질서에는 거의 무감각하게 되어가고 있다.삶은 추상적개념도 아니며 철학적 이론도 아니다. 오늘날 특히 그렇다. 삶은 멀리서 바라볼수 있는 산이 아니라 눈앞의 나무들이며 거리를 두고 감상할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 당장 따먹고 살아야하는 나뭇잎들이다.그러나 인간은 나뭇잎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그것만을 볼수도 없다. 나뭇잎, 나무, 산, 지구, 우주는 서로 뗄수 없는 자연의 한 위계질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의 뜻은 나무의 맥락에서만, 나무의 의미는 산의 관점에서만, 산의 뜻은 지구의 맥락에서만, 지구의 깊의 뜻은 우주에 비추어서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정신적 여유 회복을
인간의 삶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개별적 하나하나의 행동과 경험은 나의 인생이라는 보다 일반적 개념에 비추어서 의미를 갖고 나라는 한 구체적 인생은 보다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인류'라는 개념의 차원에서만 보다 깊은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아무리 일상 생활에 쫓기면서 다난하고 어지러웠던 한해를 보냈더라도 우리는 이제 미시적 일상성을 떠나 단계적으로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나뭇잎, 나무, 산, 지구 그리고 우주간의 위계적 질서를 읽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러한 우주의 의미에 대한 명상적 의식과 시적 감동의 능력 회복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생각하고 느낄 정신적 여유를 잃고 살았다. 돈버는 데만 바빴었다.〈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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